바이로챠나/사 찰

수덕사

왈선생 2011. 8. 8. 23:26

▲ 수덕사 대웅전, 주심포 양식에 맞배지붕으로 얼핏보면 단순하지만, 너무나 깔끔하고 정갈한 불전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처음 턱 보는 순간 참으로 간결하고 아담하다는 느낌이 든다. 높은 기단 위에 널찍한 3간의 정면과 단순한 맞배지붕을 갖추고 있다. 군더더기 같은 것은 아예 없다. 뭐 별로다 하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든다. 마당 끝에서 보아도 지붕 끝선이 산 위로 넘어서지 않는다. 그냥 산에 안겨있는 간단 단순한 절집처럼 보인다.

깔끔하게 단장한 이웃집 아저씨 같다. 정면과는 달리 좁은 측면은 4간이다. 정면간이 넓어 솟아있는 느낌보다 옆으로 평평하게 퍼져 있는 느낌이 강해 안정감을 준다. 한번 더 보면 세련된 아담함이 정겹게 풍겨 나옴을 느낀다.

수덕사는 유명한 절이다. 항상 수덕사는 복작거린다. 그러나 대웅전 영역 바로 직전까지는 좀 안타까운 절이다. 일주문과 금강문을 지나면서 특별한 경계적 감동이 없다. 이상 세계에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나 수련 과정을 지나고 있다는 감각이 없다.

▲ 위: 대웅전 앞 누각, 아래: 미륵불상, 대웅전 아래 동네는 도대체 절간 모습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중국식 미륵불은 또 왜 있는지...
누각 건물 옆의 미륵보살상도 밉다. 우리 조상이 만든 미륵불이 아니라 중국 미륵불이다. 왜 저 ‘금복주’같은 미륵불이 저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천왕문을 지나면 좌우로 크게 벌린 거대한 누각이 나타난다. 누 아래를 지나 대웅전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 대부분 누하진입하면 곧바로 중심법당이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벽이 나타난다. 답답한 진입이다. 컴컴한 누 아래를 지나면 환한 진리의 세상이 드러나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왜 이런 진입 방식을 택했을까? 안타깝기 짝이 없다.

누하진입 후 계단을 올라가면 대웅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중간에 축대가 하나 있고, 그 아래에 새로 만든 3층석탑이 중앙에, 범종각과 법고각이 좌우에 있다. 중앙의 대웅전이 매우 단순한 듯해서인지 범종각과 법고각은 최고로 화려하게 꾸몄다.

▲ 수덕사 대웅전 앞의 범종각. 맞은편 법고각과 함께 대웅전 좌우에서 매우 화려하다. 대웅전이 단순 간략하니 복잡 화려로써 조화를 이루려 했다.
대웅전 앞에 통일신라 때의 3층탑이 한 기 있고, 축대 아래 또 최신형 3층석탑이 있을 뿐 대웅전 앞은 트여 있다. 대웅전 맞은편에 선방이 길쭉하게 자리 잡아 대웅전 앞마당을 아담하게 조성했으나, 최근에 와서 선방이 없어지고 저렇게 열린 공간이 되고 말았다.

중간에 있는 축대 아래 누각건물을 세우고 그 아래로 누하진입한다면 대웅전 공간이 살아날 뿐만 아니라 대웅전의 시각적 위상도 크게 높일 수 있지 않을까. 맘대로 상상해 본다.

영주 부석사 가람배치는 이런 공간 활용을 통해 해탈 과정, 진리가 만드는 자유의 경지를 적절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안양루로 누하진입하면 무량수전 편액이 보이면서 무량수불 극락전이 드러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곳이 그대로 극락의 앞마당임을 느낄 수 있게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 영주 부석사의 안양루와 무량수전, 안양루 밑으로 통과하면 무량수전 전면이 보이면서 그곳이 극락세상임을 안다. 수덕사가 배울 점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주심포 맞배지붕 건물이다. 기둥 위에만 지붕의 무게를 기둥으로 전달하는 공포가 있다. 지붕 모양만큼이나 공포도 단순하다. 정면이 넓어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지는 기둥은 배흘림기둥으로 푸근하다. 조선시대처럼 휘어지거나 굽은 나무는 눈을 씻고 찾으려야 보이지 않는다. 기둥 바깥으로 걸친 외목도리가 하나밖에 없다.

공포에는 창방을 주두 아래로 끼워 넣어 헛첨차로 사용했다. 기둥 위에 굽을 갖추고 있는 주두를 두고 그 위에 살미와 첨차를 교대로 끼워 맞춰 외목도리를 받치고 있다.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으니 도리를 받치는 장혀도 짧다. 군더더기를 가능하면 최소화했다. 그러나 첨차와 살미, 주두와 소로, 단장혀 모두 최고의 정성으로 다듬었다. 모두가 공예품이다.

▲ 수덕사 대웅전 귀공포와 건축물 박물관의 모형, 공포, 도리,서까래,기둥 모두 최고의 정성을 다해 공예품처럼 깍았다.
공예품들로 조성한 거대한 절집이니 절집 전체가 바로 공예품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옆면에서 보면 그 공간 구성도 세련되었다. 기둥과 창방과 들보들로 구성된 공간 나눔은 깔끔하고 풍성하다. 앞 칸에 만든 문도 정겹다. 기둥과 기둥 사이 창방을 걸치고 그 아래 문을 단 모습도 그저 적당하여 예쁘다. 문이 예쁘면 그 곳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마루들보에서 마루도리를 받치는 솟을합장이 보인다. 고려시대 건축에서 드러나는 특징이다. 아래위 도리를 연결하기 위해 곡선 들보를 활용했다. 소꼬리 모양으로 보였나 보다. 우미량(牛尾梁)이라 부른다. 위에서 아래로 물결처럼 내려가는 우미량이 풍성한 우아함을 더한다.

▲ 수덕사 대웅전 옆면, 공간 구분이 예술적이다. 곡선의 우미량과 들보의 직선과 곡선이 아름답다. 문의 크기와 모습도 정겹다.
고려시대의 건물은 주심포건물이라 내출목이 없고, 천정을 구성하는 부재들을 모두 공예품으로 깎고, 그것을 조화롭게 구성했다. 따로 천정을 해 넣어 가릴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맘껏 드러내다. 이를 연등천정이라 부른다. 고려시대의 절집에는 연등천정이 많았나 보다. 조선에 들어와서야 공포는 규격화되고, 또 내부출목이 많아지고, 또 나무가 부족해서인지 굽은 나무를 그대로 서까래와 들보로 사용함에 따라 번잡해져 버렸다. 그래서 복잡하여 짜증나는 것을 가리기 위해 새로운 천정을 해 넣었다.

▲ 수덕사 대웅전 내부 퇴보 모습, 기둥과 들보, 서까래 등이 훤히 보이고 천정막을 해넣지 않았다. 간결하면서도 정갈한 내부가 자신있어 보인다.
충청도 말씨는 느리면서 부드럽다. 충청도 산야도 그렇다. 치솟은 산보다는 올망졸망 부드럽게 뻗어 내린 산이 많다. 말씨와 산야가 닮았다. 그러다보니 수덕사 대웅전도 그들을 닮아 저렇게 부드러움을 갖췄다. 우미량과 화려한 대공들이 이런 우아한 충청도, 멀리는 백제 문화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헛첨차가 없고, 들보와 들보 사이에 행공을 두고, 그것들이 모두 높고 낮은 도리와 딱 맞게 연결함으로써 우미량을 걸치지 않아도 되게 했다. 정면간이 넓지 않아 기둥들 간격이 좁으며 수미단을 서쪽에 두어 예배공간을 길게 함으로써 기둥을 길게 나열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면 장중하게 보인다. 기둥과 들보 행공들이 직각으로 교차하면서 강직한 느낌을 주었다. 곡선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 부석사 무량수전 천정, 기둥과 들보가 중첩되게 직선으로 연결되어 장중한 느낌이 든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백두대간이 지리산으로 방향을 바꾼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깊고 긴 능선들이 줄지어 늘어선 곳이다. 동해안 높은 산들이 즐비한 곳에 어울리게 강직하고 상승감이 느껴지게 조성했다. 부드러운 이미지보다는 당당하고 강직한 분위기가 주변과 어울린다. 경상도 말씨도 이런 조건에서 생겨났는지 무량수전과 어울린다.

수덕사 대웅전의 우아한 느낌은 대웅전의 내부에 들어가면 더욱 뚜렷이 볼 수 있다. 들보의 끝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살살 만져보고 싶어진다. 꼭 어린애 엉덩이 같다. 천정에서 살짝살짝 보이는 우미량의 곡선이 주는 묘미도 멋있다. 원래 들보 등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화려한 용그림의 일부를 지금도 볼 수 있다. 아울러 대웅전의 벽면에도 벽화가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수리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져 남은 그림으로만 일부를 볼 수 있다.

이런 그림이 살아있을 때의 수덕사 대웅전의 내부는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지는 멋을 느낄 수 있었으리라.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시는 전당이 대웅전이니, 대웅전 내부는 해탈의 경지를 공간으로 표시한 셈이다. 수덕사 대웅전 내부는 이런 극락, 진리가 불을 밝히는 세상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산이 있어 절이 있게 된 것이다. 산을 올라가보지 않고 절을 말할 수 없지 않은가? 덕숭산은 오르기도 참으로 편안하다. 계곡이 깊은 듯하지만 이내 편안한 길이 된다. 조금 올라가면 만공스님의 뜻에 따라 만들었다는 미륵보살상이 나타난다. 큰 네모 관을 쓰고 그 위에 탑을 올린 모습이 옛날에는 볼 수 없었던 형태다. 가슴에 모아 쥔 손 모양과 큰 머리에 살포시 짓고 있는 미소가 어딘지 어설프다.

조금 더 올라가면 만공(萬空)스님의 승탑이 나타난다. 네모난 2중의 기단 위에 네모난 탑신을 여럿 붙이고 그 위에 공모양의 상륜부가 얹혀 있는 현대식 이형승탑(異形僧塔)이다. 각 부위의 모양과 크기가 조화를 이뤄 보기가 좋다.

▲ 덕숭산 만공탑, 만공스님의 사리를 모신 탑이다. 실천행을 강조하는 뒷면 글귀가 좋다.
뒷면을 돌아보니 천번의 생각은 한번의 실천보다 못하다(千思不如一行)는 글귀가 한눈에 들어온다. 승탑에 이런 글을 남긴 만공스님의 실천력이 단번에 느껴진다. 참선과 실천을 소중히 여기고, 기복적 경향을 경계한 스님을 덕숭산 중턱에서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올라오느라 흘린 땀이 졸지에 시원한 바람으로 변해버렸다.

덕숭산 정상에서 산 아래를 내려보니 역시 부드러운 산세들이 연이어 푸근하다. 충청도 말씨를 닮은 자연환경이다. 사람조차 자연처럼 되어버리길 원했던 우리 조상들의 자연친화성을 덕숭산과 수덕사에서 다시 한번 느낀다. 최근에 새로 세우고 뜯고 다시 세우고 있는 대웅전 아랫동네는 빼고.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절집은 어디일까? 간단히 말하면 충청도 예산 지역에서는 단연코 수덕사 대웅전이 최고의 절집이고, 경북 영주 지방에서는 단연코 부석사 무량수전이 최고의 절집이라 생각한다. 무량수전이 수덕사 대웅전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예산 수덕사 대웅전에서 우아한 진리 세상을 만나고,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서는 장중한 극락 세상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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