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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석가모니에 대한 평가

왈선생 2013. 10. 26. 17:24
그는 위대한 교사요, 사람들의 조련사로서 독특한 명성을 가졌다. 코살라의 왕에게조차 공포의 대상이었던 살인자요, 악한인 앙굴리말라(Angulimala)에 대한 그의 대화와 교화는 그의 위대한 능력과 재능이 드러난 본보기이다. 사람들은 그를 보거나 그의 가르침을 듣고서 매혹되었으며, 반대자들은 그가 어떤 '유혹적인 속임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지만 그의 새로운 가르침을 듣고서는 매우 빠르게 개종했다. 이런 사실은 코살라 국왕의 논쟁으로써 석가모니를 꺾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갔던 이들이 결국에는 그의 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자비와 지혜로 가득 찬 그는 각자의 소질이나 수준에 따라 그들의 구제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았음이 인정된다. 그는 단 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도 먼 거리를 갔었다고 알려져 있다. 제자들에게 다정하고 헌신적이었던 그는 언제나 그들의 행복과 진보에 대해서 물었다. 정사에 머물러 있을 때면 그는 매일 환자들의 병실을 방문했다. 언젠가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방치한 병든 수행승을 돌보면서, "병든 이를 돌보는 자는 나를 시중 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회개혁자로서의 석가모니는 인도에서 오래 전에 확립되어 고수하고 있던 카스트 제도를 비난했고, 인간의 평등을 인정했다. 또 그는 경제적인 부와 도덕적 진보 사이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는 말하기를, "형벌을 통해 죄를 억압하려는 것은 헛되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가난은 부도덕과 범죄의 원인이므로 사람들의 경제적 조건이 증진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은 〈전륜왕사자후경 轉輪王獅子吼經〉을 비롯한 초기의 여러 경전에 잘 나타나 있다. 특히 경제문제에 관해서는 바른 직업에 종사하고 진실을 말하며, 타인의 이익을 도모하여 열심히 노력함으로써 신뢰를 얻어 명예와 재산을 획득하기를 권하고 있다. 그러나 재산을 일방적으로 획득하는 데 그치고 단지 자신의 자본으로 보존해두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했으며, 자신이 이용하는 동시에 타인과 같이 향수케 하여 유효하게 이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부채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광야를 여행할 때의 길동무처럼 가난한 가운데서 나눠주는 사람들은 죽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멸하지 않는다. 이것은 영원한 법이다"라고 말하여 서로 협조하여 나아가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당시의 불교도는 국가의 문제에 관해서 국왕은 힘으로써 민중을 억압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왕의 지배로부터 가능한 한 벗어나서, 먼저 출가자들 사이에서만이라도 완전한 이상사회를 구축한 연후에, 그 정신적 감화를 통해 일반사회의 개혁을 실행하고자 했다. 이것이 석가모니가 승가를 제정한 정신이라고 평가된다. 하지만 국가를 완전히 무시하고 사회적 이상을 실현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자연히 국가의 지도자를 문제 삼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는 몇몇 경전에서 국왕의 자질을 거론하고 있으며, 바지족의 공화제 정치를 칭찬했다고도 전한다. 불교 교단의 운영 방식에는 당시의 공화정치나 조합을 모방한 점이 있음이 인정된다. 국가에 대한 그의 지론은 단적으로 말해서 "국가란 진리인 법을 실현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석가모니는 엄격한 교사였다. 강대한 코살라국의 파세나디 왕은 어떻게 석가모니가 비구들의 공동체에서 그러한 질서와 계율을 유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형벌을 내릴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왕으로서도 인민은 물론이고 자신의 왕실에서조차 질서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있는 서로의 사랑·애정·존경에 기초하여 질서와 계율을 유지시켰다. 그에게는 많은 신통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그는 신통력에 아무런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았다(→ 기적). 어느 때 제자들 중의 1명이 대중 앞에서 신통력을 과시하자 석가모니는 그를 꾸짖고서 재가신도들 앞에서 신통을 행하지 말라는 규정을 만들었다. 그는 가장 위대한 신통이란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석가모니에 대한 다양한 묘사를 종합해보면, 그는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비참한 광경을 보고서, 이성적인 사상체계와 생활방식으로 인간을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결심했으며, 그것을 실천했던 위대한 지혜와 자비의 인물이다. 그에 대한 평가를 단적으로 표현하면 그는 위대한 지혜의 소유자요, 위대한 자비의 실천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의 생존시에는 그의 가르침을 직접 들을 수 있어서 교단 내부의 문제까지도 그의 지시에 따라 해결했지만, 그가 입멸한 후에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를 사모하는 귀의자들에게 그의 입멸은 커다란 지표를 상실하는 사건이었다. "법을 의지처로 삼고 자기를 의지처로 삼으라"라는 유언이 있었지만, 석가모니 부처에게 의지하려는 경향은 더 커져가기만 할 뿐이었다. 인간인 석가모니 부처가 사모의 정을 품고 있던 제자들에 의해 초인간적 존재로 바뀌어가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먼저 경전에서는 석가모니 부처가 이미 신격화된 표현으로 불리게 된다. 이어서 그는 '부처'로 불리고 '고타마'라는 인간으로서의 성(姓)은 결코 사용되지 않으며, 이윽고 부처의 10가지 호칭, 즉 여래10호(如來十號)가 정해진다. 그것은 ① 완전한 인격자인 여래(如來), ② 존경해야 할 사람인 아라한 또는 응공(應供), ③ 바른 깨달음을 연 사람인 정변지(正遍知) 또는 정등각(正等覺), ④ 밝은 지혜와 실천을 구현하고 있는 사람인 명행족(明行足), ⑤ 행복한 사람인 선서(善逝), ⑥ 세간의 일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인 세간해(世間解), ⑦ 최상의 사람인 무상사(無上士), ⑧ 거친 자를 제어하는 사람인 조어장부(調御丈夫), ⑨ 신들과 인간의 스승인 천인사(天人師), ⑩ 세상에서 존귀한 분인 세존(世尊)이다. 모든 것을 완수하여 불가능한 일이 없는 부처는 신체적으로 뛰어난 특징을 갖추고 있다고 해석되기에 이르는데, 그 특징은 '32 상(相)'과 '80 종호(種好)'라고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에는 인도인들이 신봉하는 신의 특징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는데, 이상적인 신체적 특색을 부처에게도 적용한 것이라고 이해된다. 그런데 법을 깨달은 자가 부처이므로 그가 아무리 초인적인 취급을 받더라도 석가모니 이외에도 부처가 되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석가모니 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하기 이전에 7인의 부처가 있었다는 과거불(過去佛) 사상이 등장했다. 부처가 신격화됨과 아울러 부처에 대한 신앙도 강조된다. 아소카 왕 시대에는 이미 그러한 경향이 명확하게 나타난다.
한편 석가모니 부처 사후의 교단 지도자들은 석가모니 한 사람만이 부처이고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부처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며, 아라한과(果)라는 경지를 얻는 것만이 최고의 경지라고 생각하여 석가모니와 구별했다. 이로부터 부파 불교의 고정관념이 시작된다. 이것은 현재 남장 상좌부의 기본적 사고의 하나로 되어 있다. 또 한편으로 석가모니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고 그뒤에 탑을 세움으로써 시작된 사리탑 또는 불탑에 대한 신앙은, 석가모니 부처의 육신이 남긴 사리에 대한 존경뿐 아니라 그가 남긴 모든 것에 대한 신앙으로 전개되었다. 석가모니 부처에 대한 열렬한 감정을 품고 있던 사람들은 그가 남긴 머리카락이나 가르침에도 신앙의 정을 품고 있었으므로, 후대에는 경전을 사리탑에 봉안하여 신앙하는 경우까지 생기게 된다. 석가모니 부처가 설한 가르침을 직접 들을 수 있던 시대에는 사람들이 석가모니 부처 자신에게 귀의했겠지만, 그가 입멸한 후에 이루어진 귀의는 모두 석가모니 부처가 설한 가르침을 근거로 한 것이다. 아무리 진리인 법이 부처의 입을 통해 설해진 것이었다 하더라도 불멸 이후의 귀의는 법 그 자체에 대한 귀의와 동일시되고, 우주의 진리는 부처 그 자체라고 간주되었다. 불탑 숭배를 중심으로 하여 시작된 소위 대승불교에서는 이러한 사고가 크게 전개되어, 법신·보신·화신이라는 3신설이 성립되기에 이른다. 법신(法身)이란 우주의 진리 그 자체를 부처의 신체라고 간주하여 그렇게 부른 것이다. 진리, 즉 법의 영원성을 자각한 대승불교도가 부처에 대한 귀의를 표명하여 발전시킨 사상이다. 보신(報身)이란 부처가 되기 위해 과거에 위대한 수행을 완수한 그 보답으로 나타난 부처의 훌륭한 모습을 의미한다. 아촉불이나 아미타불 등의 구체적인 부처들은 보신이다. 진리를 깨달은 자는 누구라도 부처가 됨을 의미한다. '부처가 될 가능성'(佛性)은 모든 사람에게 있으나, 그 가능성이 번뇌에 덮여 있어 그것을 발견할 수 없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러한 사고의 발전이다. 이것은 모든 생명체가 부처가 된다고 설하는 데까지 전개된다. 또 무한한 선행을 거듭 쌓은 결과로 미래에는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라는 보증을 주는 사상도 생겼는데, 이를 수기(授記)라고 한다. 끝으로 화신(化身) 또는 응신이란 부처가 중생제도를 위해 수많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현실 세계에 내려와 나타내는 신체이다. 여기에도 상좌부 계통이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아라한이 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입장과,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하는 보살의 입장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양측 모두 석가모니 부처를 숭배하고 있지만, 후자로부터는 석가모니 부처에게로 되돌아간다는 기본적 명제를 제창하면서 부처와 한 몸이 되고자 하는 대승사상이 전개되었다. 이와 같은 수많은 사상적 발전은 모두 석가모니 부처의 영원성을 구하고자 노력한 결과로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출처 : 박재홍
글쓴이 : 제레드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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