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불교

티벳사자의 서의 파드마삼바바와 연화생대사심주

왈선생 2011. 6. 11. 13:13

 

 

 

 

 

고래 이래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죽음일 것이다. 좀처럼 생각 하기 싫고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 되지만 주변에 죽는 사람들을 보게 될 때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 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애써 죽음에 대하여 생각 하려 않고 외면 하며 살아 가기도 한다. 그러나 종교적으로 보았을 때 죽음은 가장 큰 관심사이다.

 

죽은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나

 

죽어서 천상으로 가느냐 지옥으로 가느냐는 또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등 악도에 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다시 사람의 몸을 받을 것인지는 죽어 보아야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티벳불교에서는 죽은 다음에 지침이 있다. ‘티벳사자의 서에 나오는 행동 요령을 따르면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잘 하면 해탈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티벳사자의 서는 일종의 죽은 다음에 취해야 할 행동지침서내지 죽음안내서와 같은 책이다. 사람들은 죽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다음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다. 그런데 티벳사자의 서를 보면 죽은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할 것인지를 요일별로 상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 죽은 첫째날에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 둘째날의 행동요령, 셋째날이렇게 49일 까지의 행동지침이 나와 있다.

 

티벳에서 임종을 지켜 볼 때 스님을 부르는데 스님은 죽어 가는 사람의 귀에 대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 고귀한 집안의 사람이여, 지금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도착했습니다. 당신만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므로 이 생에 대한 욕망과 동경심을 갖지 마십시오. 설사 당신이 욕망과 동경심을 갖는다 하더라도 당신은 머물 수 없으며 오직 윤회계에서 방황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욕망을 버리십시오. 동경을 하지 마십시오. 불법승 삼보님을 기억하십시오. 오 고귀한 집안의 사람이여, 다르마타 바르도에서 어떠한 무서운 투영들이 나타나더라도, 이 말을 잊지 말고 그 뜻을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서운 투영이다. 죽음순간에 보이는 무서운 형상들은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낸 환영이라는 것이다. 죽으면 의식이 아홉배로 각성 되기 때문에 생각 나는 대로 환영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이 만들어 낸 투영에 대하여 무서워 하지 말고 오로지 불법승 삼보에 의지 하여 앞으로 계속 나아 갈 것을 권유 하고 있다.

 

맑고 밝게 찬란하게 빛나는 푸른 빛을

 

티벳사자의 서에서 죽음 첫째 날부터 새로운 세계로 가게 될 때 까지의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 하고 있고, 또한  어떻게 대처 해야 할지에 대하여  행동지침을 마련해 주고 있다. 죽고 나서 첫째날의 행동 지침은 다음과 같다.

 

 

“오 고귀한 집안의 사람이여, 4일 반 동안의 무의식 상태가 지나면 당신은 움직이게 되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깨어나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리둥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바르도 상태임을 알아차리십시오. 그때 윤회는 되돌아가게 되고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은 빛과 영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모든 공간은 푸른 빛으로 빛날 것이며, 신성한 비로자나 부처님이 모든 곳에 고루 미치는 원의 중앙 세계로부터 당신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의 몸은 하얀색이고, 사자 보좌에 앉아 여덟 개의 살이 달린 바퀴를 손에 들고 있으며, 그의 배우자 우주 공간의 여왕을 포옹하고 있습니다. 그것의 근원적인 순수함 속에서, 의식의 무더기(識蘊)의 빛이, 다르마다투의 지혜이며 밝고 분명하고 날카롭고 찬란하게 빛나는 빛이, 비로자나 부처님과 그의 배우자의 심장으로부터 당신을 향하여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꿰뚫기 때문에 당신의 눈은 그 빛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 빛과 함께 천상 세계의 흐릿한 하얀 빛 또한 당신을 향해 나타나 당신을 꿰뚫을 것입니다. 그때 나쁜 업의 영향으로 당신은 겁이나 밝고 푸르게 빛나는 다르마다투의 지혜로부터 달아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상 세계로부터 나오는 흐릿한 하얀 빛을 향해서는 즐거운 감정을 느낄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최상의 지혜로부터 나오는, 밝게 빛나고 매우 예리하고 분명한 푸른 빛을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 빛은 다르마다투의 지혜라고 불리는 부처님의 광선이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헌신의 마음으로 그 빛에 끌리십시오. 그 빛을 간절히 바라고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이 빛은 신성한 비로자나 부처님의 자비의 광선이다. 나는 그 안에 피난한다.’ 그 빛은 바르도의 위험한 좁은 길에서 당신을 이끌어 주기 위해 나타난 신성한 비로자나 부처님입니다. 그 빛은 신성한 비로자나 부처님의 자비의 광선입니다.

 

천상 세계에서 나오는 흐릿하고 하얀 빛 안에서 즐거움을 취하지 마십시오. 그 빛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그 빛을 동경하지 마십시오. 만일 그 빛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당신은 천상 세계에서 방황하게 될 것이고 여섯 세계를 윤회할 것입니다. 그것은 해탈의 길을 막는 장애물입니다. 그러므로 그 빛을 바라보지 맑고 밝게 빛나는 푸른 빛을 간절히 바라십시오. 그리고 신성한 비로자나 부처님을 강하게 집중하고 저를 따라 다음의 기원문을 반복하십시오.

 

 

내용을 보면 첫째 날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죽자 마자 맑고 밝게 찬란하게 빛나는 푸른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빛이 해탈로 이끄는 부처님의 광선이기 때문이다.

 

그 빛에 끌리고 그 빛으로 피난 하면 해탈 하게 되는데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하고 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맑고 찬란 하게 빛나는 푸른 빛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대신 흐릿하거나 하얀 빛에 더 끌리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윤회계를 방황 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날의 경우 맑고 찬란 하게 빛나는 푸른 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그 대신 하얀 빛이 비칠 것이라 한다. 그 빛으로 피난 하면 금강보살(바즈라삿트바)의 세계로 인도 된 다는 것이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빛의 밝기는 어두워 지고 흐릿해 지고 회색으로 바뀌어 간다. 티벳사자의 서에서는 이런 흐릿하거나 회색빛에 대하여 끌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악도에 끌리게 하는 빛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가능 하면 밝게 빛나는 하얀빛을 동경하고 그 쪽으로 끌리게 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 밝고 찬란한 빛 보다 흐릿하고 칙칙한 회색빛에 더 끌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것은 아마도 그 사람이 살아온 업의 과보라 볼 수 있다.

 

중유(中有)에 대한 남북방 불교의 입장을 보면

 

티벳불교를 포함하여 동아시아의 불교에서 중유(中有)’를 인정 하고 있다. 그 기간은 보통 49일이다. 49일 동안 태어날 곳이 결정 된다는 것이다. 죽자 마자 열반에 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날자가 지남에 따라 지은 업에 따라 갈 곳이 결정 된다는 것이다.

 

북방불교에서 중유를 인정 하고 있는 것과 달리 남방상좌불교에서는 중유를 인정 하지 않는다. 죽자 마자 곧바로 갈 곳이 결정 된다는 것이다. 즉 마음이 순간 순간 생멸 하듯이 죽음과 탄생 또한 순간적으로 일어 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죽음과 탄생사이의 간격이 없는 무간(無間)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24가지 빳짜야(paccaya)에 나오는 틈 없이 따르는 조건(아난따라 빳짜야, 무간연)’더욱 틈없이 뒤 따르는 조건(사마난따라 빳쨔야, 등무간연)’에 따른 다고 볼 수 있다. 중유와 무간에 대한 상좌불교와 대승불교를 비교 하면 다음과 같다.

 

 

  

최초의 마음

일생의 마음

마지막 마음

중음

상좌불교 아비담바

재생연결식

바왕가

죽음의식

무간(無間)

대승불교 구사론

생유

원유

사유

중유(49)

 

 

죽는 순간에 티벳불교에서는 맑고 찬란 하게 빛나는 푸른 빛을 이야기 하고 49일 동안 지은 업에 따라 갈곳이 결정 되다고 말하고, 동아시아 불교에서 염라대왕의 심판을 말하기도 하지만 상좌불교에서는 다음의 세가지 사항을 말한다.

 

 

첫째, 살면서 지었던 행위의 회상인 업(kamma)이 나타난다(K).

둘째, 업과 관련된 주변 조건인 업의 표상(kamma-nimitta)이 나타난다(KN).

셋째, 태어날 곳의 표상(gati-nimitta)이 나타난다(GN).

 

 

삶의 과정에 있어서 지은 업이나 그 업과 관련된 강렬한 표상 또는 태어날 곳의 표상을 대상으로 죽음의 마음이 일어나서 재생 된다는 것이다. 마음은 대상이 있어야 일어나고, 일어 났다고 사라지는 것이고, 한 순간에 오로지 한가지 일 밖에 못하는 마음의 법칙이 그대로 죽음의 마음에도 적용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음과 재생 연결 되는 순간을 보면

 

참고로 상좌불교에서 죽음과 재생 연결 되는 순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아미담마 길라잡이를 참고 하였다.

 

 

 

전생

현생

대상

 

 

죽음 직전의 마음 (**K/ KN/ GN 중에 하나가 대상이 됨)

 

마음

Pt

···

···

Cc

Pt

···

···

B

A

C

U

P

E

Sp

St

V

J

J

J

J

J

Cc

 

내생

3

4

(**)가 대상이 된다

내생의 대상

 

 

 

Pt

B1

B2

B3

···

B16

M

J

J

J

J

J

J

J

B

···

···

Cc

Pt

···

···

Cc

Pt

···

···

Cc

 

B : Bhavaga (바왕가), A : Atīta-bhavaga (지나간 바왕가), C : bhavaga-calana (바왕가의 동요)

U : bhavaga-uccheda (바왕가의 끊어짐), P : Pañcadvārāvajjana (오문 전향), E : 오식 중 하나

Sp : Sampaicchana (받아들임), St : Santīraa (조사), V : Votthapana (결정), M : Manodvārāvajjana (의문전향)

J : Javana (속행), T : Tadārammaa (등록), K : (kamma), KN : 업의 표상 (kamma-nimitta)

GN : 태어날 곳의 표상 (gati-nimitta), Pt : 재생연결식 (paisandhi), Cc : 죽음의 마음 (cuti-citta)

출처; 아비담마 길라잡이

 

 

죽음에 직면한 사람에게 있어서 마지막 인식과정은 바왕가(B : Bhavag, 바왕가)가 방해 받으면서 시작 된다. 바왕가는 한 찰나 동안만 동요하고 정지( C : bhavaga-calana, 바왕가의 동요) 된다. 그 다음은 다섯감각의 문의 하나에 어떤 감각대상이 나타나서 오문과정(P : Pañcadvārāvajjana,오문 전향)이 시작 되거나, 마음의 문에 나타난 감각의 대상이나 마음의 대상을 대상으로 삼아 의문(意門)과정(E : 오식 중 하나)이 시작 된다.

 

이 맨 마지막의 자와나(J : Javana, 속행)과정은 아주 미약하기 때문에 보통의 일곱 번(JJJJJJJ)이 아닌 오직 다섯번(JJJJJ)의 심찰나만 일어 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보통 자와나과정이 가지는 생산업의 능력이 없다. 단지 재생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고 여겨지는 과거의 업을 위한 통로의 역할을 한다.

 

다섯가지 자와나 단계의 다음에 두가지 등록의 마음(T : Tadārammaa, 등록)이 일어 나기도 하고 일어 나지 않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바왕가(잠재의식)가 마지막 인식과정에 따라 오기도 한다. 그럴 경우에는 맨 마지막의 마음인 죽음의 마음(Cc : 죽음의 마음, cuti-citta)이 금생으로부터 떠나가는 기능을 수행한다. 죽음의 마음이 멸하면 생명기능( 명근, jivitindriya)은 끊어 진다.

 

그러면 육체는 단지 온도에서 생긴 무정물의 덩어리로 남게 되며, 그렇게 해서 송장이 가루가 되어 없어 질 때까지 지속된다. 이렇게 해서 한 존재의 생명이 끝나게 되는 것이다.

 

그 죽음의 마음(Cc)이 멸하자 마자(무간) 새로운 세계에서 재생연결의 마음 (Pt : 재생연결식, paisandhi)이 마지막 자와나의 과정에서 얻은 그 대상(K/ KN/ GN 중에 하나)인지 하면서 일어 난다. , 죽음의 마음을 일으키게 한 대상(K/ KN/ GN 중에 하나)은 전생의 마지막 자와나과정의 14가지 마음의 대상이 되고, 내생의 처음 세 마음(Pt : 재생연결식 (paisandhi), B : 바왕가(Bhavaga), Cc : 죽음의 마음 (cuti-citta))의 대상이 된다.

 

이 재생연결의 마음은 물질이 있는 세계(욕계, 색계)에서는 심장토대를 의지 하고, 무색계의 세계에서는 토대가 없이 일어난다. 이것이 상카라()들에 의해서 생겼다고 표현 한 것은 바로 전생의 마지막 자와나의 과정에서 생겼다는 뜻이다. 자와나의 과정이 바로 유익하거나() 해로운 업(불선)이 일어나는 상카라(), 즉 의도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전생의 마지막 자와나의 과정은 윤회의 두 가지 뿌리에 근거 하고 있으니 바로 그 것은 무지의 잠재성향(무명)과 갈애의 잠재성향(갈애)이다.

 

홀로 바르도 상태에서 방황할 때

 

상좌불교에서 중유를 인정 하지 않고 마음이 순간적으로 일어 났다 사라지듯이 죽음과 재생 역시 순간적인 현상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죽음 이후에 전개 되는 무서운 환영이나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티벳 불교에서는 중유를 인정 하고 있기 때문에 죽은 다음에 전개 되는 상황을 무섭고 두려운 장면으로 묘사 하고 있다.

 

 

제가 인생의 여행에서 그 끝에 도달하여

이 세상의 친지들은 아무도 나와 함께 하지 않고

홀로 바르도 상태에서 방황할 때

평화와 분노의 부처님들이시여,

자비의 힘을 보내주시어

빽빽한 무지의 어둠을 걷어 주소서.

 

 

바르도의 기원문에 나오는 첫째 게송이다. 죽은 다음에 홀로 갈 수 밖에 없는 중유에서 무서움과 두려움에 떨 때 부처님을 믿고 의지 하라는 내용이다.

 

연화생대사(蓮華生大師) 파드마삼바바는

 

티벳 사자의 서의 저자는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이다. 그루 린포체 (Guru Rimpoche)라고도 불리우는 파드마삼바바는 인도 출신이다. 그는 티벳에 탄트라 불교를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8세기 활약하였던 파드마삼바바는 그 때 당시 인도불교학의 중심지인 나란다 대학에서도 수학 하였다고 한다. 파드마삼바바의 중국식 이름은 연화생대사(蓮華生大師)라 하는 데 연꽃에서 태어난 자라는 뜻이다. 이런 파드마삼바바를 기리는 노래가 있다. 연화생대사심주(花生大士心)가 바로 그것이다

 

Imee Ooi의 바즈라 구루 만트라(Vajra Guru mantra, 花生大士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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