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티벳(吐蕃)땅을 경유했던 신라인(新羅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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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순례승을 혜초(慧超)로 보고있지만 사실 혜초스님 이전에 티벳땅을 경유해 인도로 갔던 스님이 계시다. 혜륜(慧輪),혜업(慧業),현각(玄恪),현태(玄太) 스님등이 바로 그들인데 혜초스님과 같이 여행기(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를 남기지 않아서 세부적인 사적은 확인할수가 없다. 이들 스님들에 관한 기록은 당의 승례승인 의정(義淨)스님의『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 잘 나와있다. 그중 혜륜스님을 보자.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
혜륜(慧輪)의 범어 이름은 반야발마이고 국적은 신라(新羅)이다. 출가한 다음 여래의 성적을 그리워하여 배를 타고 광동 지방에 이르렀고 그 뒤 도보로 장안에 가서 머물렀다. 대흥선사(大興善寺)에서 범문을 배운 후 정관 연간에 칙서를 받고 떠나는 현조를 따라 서행했다...(생략)...멀리 오랑캐 땅을 지나 토번(吐蕃-오늘날 티벳)국에 이르렀다. 거기서 문성공주(文成公主)의 도움으로 천축(天竺-인도)국으로 가서 마하보리사에서 4년 동안 머물고 다시 여래의 유적을 두루 순례하면서 구사론(俱舍論)을 힘서 배우고 닦았다.
윗 기록대로 혜륜(慧輪)스님을 신라(新羅)출신으로서 토번(吐蕃)을 지나 천축(天竺-인도)으로 갔다. 문성공주(文成公主)는 토번의 첸뽀(贊普-황제,대왕) 송첸캄포(松贊干布)에게 시집온 당나라 공주이다. 즉 혜륜(慧輪)스님은 토번의 도움하에서 천축으로 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아시다 싶이 인도와 티베트 사이는 카일라스 산맥,히말라야 산맥등이 가로막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산맥들을 뚫고 토번을 지나 인도로 갔던 것일까?
그러나 토번(吐蕃)과 천축(天竺)을 연결해주는 길이 있었다는것을 알려주는 정사(正史)기록이 있다. 바로 『구당서(舊唐書)』에 나오는 이 내용이다.
『구당서(舊唐書)』
태종22년 왕현책(王玄策)은 서역(西域)으로 중천축(中天竺)을 노략하기 위해 향하였고 토번(吐蕃)은 현책(玄策)과 함께 천축(天竺)을 공격하여 크게 적진을 격파한고로 사자를 보내어 승전의 소식을 전했다.
네팔의 역사에도 우다야데바(Udayadeva)의 아들 나렌드라데바(Narendradeva)는 당나라와 토번에 우호적이었고 647년에 왕현책(王玄策)이 이끄는 사절단이 네팔에 입국했다 하였다.『N.B. Thapa 「A Short history of Nepal」,Katumendu,Nepal pp21-23』에 나와있는 이 네팔 내용상으로 보아도 윗 내용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이 길이 바로 입축구법로(入竺求法路)라 하는데(혹은 가칭으로 "왕현책 루트"라 한다.) 토번과 인도가 오래전부터 서로 교류하고 있음을 잘알려주는 기록이다. 티벳 기록에 따르면 433년에 인도에서 온 스님들이 불교를 포교하러 왔다고 한다. 『티베트 왕신기(王臣記)』와 『청사(靑史)-혹은 뎁데르 곤뽀(Blue Annals of Tibet)-』등에 기록되어 있는 이 기록들로 보아서도 일찍이 토번은 천축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이 내용은 신뢰성이 있으며 산맥이 가로막고 있다하여 불가하다는 주장은 말이 안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서들을 모라고 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왕현책의 경우 네팔,티벳,중국사서들의 연대는 일치한다. 이것이야 말로 입축구법로(入竺求法路)가 고대때부터 있었다는 증거이며 해동(海東)의 신라스님들이 7c때에 토번땅을 경유하여 인도로 갔다는것은 맞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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