뵈릭(티베트인)에게는 관세음보살과 더 친근한 따라보살
티베트불교의 키워드 중의 하나가 바로 따라(舊 타라:Tara: 度母)보살이다. 따라는 산스크리트어이고 '뵈게'=티베트어로는 ‘될마’라고 하고 한역하면 '度母'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모셔지는 따라보살 탕카에는 손바닥과 발바닥, 그리고 이마에도 눈(靈眼)이 그려져 있는데, 이 눈을 통하여 세상 중생들의 모든 고통을 언제 어디에서나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고도 한다.
티베트를 여행하다보면 곳곳에서 '될마 라'를 흔히 만날 수 있다. 그 하나는 여자이름(라=존칭)이고 또 하나는 고개(라=고개)이름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고개가 카일라스 꼬라 중에 둘째날 만나는 해발 5,200미터의 '될마라' 이다. 카일라스 꼬라=순례를 해본 사람들은 이해를 하겠지만, 그 고개 마루턱에서는 정말 너무 힘들어 짚프라기라도 잡고 오르고 싶은 심경이니까. 오죽하면 어느 누가 '三途解脫의 고개'라고까지 했을까. 왜냐하면 따라=될마보살은 여행길에서 부딪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여행자들을 보호해준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린따라'를 숭배함으로써 ‘8가지 커다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위험이란 불,물,사자,코끼리,옥살이,뱀,도둑,악령에 의한 질병이다. 반면에 '화이트따라'는 안정,번영,건강,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길을 가다가 위험에 처하면 다음과 같은 만트라를 염하면서 간절히 도움을 청해보자. 그러면 모든 위험이 해소될(?) 것이리라.
“옴 타라 투타레 투레 스바하”-그린따라
이 ‘따라보살’은 몸색깔에 따라 구분되어 밤에는 그린따라가, 낮에는 화이트따라로 화신하여 그녀의 도움이 필요한 중생들 앞에 나타나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해준다고 티베트민중들은 굳게 믿고 있다.
<그린따라=녹도모>
그러면 <따라보살신앙> 은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나?
간단하게 말하자면, 따라보살은 자비의 화신 관음보살의 눈물에서 태어났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연원은 수억겁전에 아다부처님(鼓音如來)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절에 이셰다와(慧月)라는 공주는 수 없는 생을 통해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에게 한량없는 공양을 올렸다.
공주는 10세부터 고행과 명상을 끊이지 않고 계속하여 79세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보살의 경지에 이르렀다. 혜월 공주가 깨달음을 얻자 부처님의 제자인 비구들이 찾아와 예를 올리고 “공주시여, 깨끗한 복을 짓고 한량없는 공덕을 쌓아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으니 속히 남자의 몸을 받아 부디 중생을 위해 법을 베푸소서.”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공주는 이를 거절하며 “남자 모습의 부처와 보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여자 모습의 불보살은 거의 볼 수 없으니 나는 이 삼사라가 텅비도록 여자의 모습으로 모든 중생을 도우리.”하고 서원하였다. 다시 여러 번을 더 안거에 들고 삼매를 이루어 공주는 고통의 강을 건네주는 어머니라는 ‘따라’로 불리게 되었다.
고통의 강을 건네 주는 인자한 어머니 같은 화신보살
따라는 실제로 어머니가 되기로 하고 부처님이 주신 환약을 먹고 축복을 받아 99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오유’라고 하는 훌륭한 용모의 보살을 아들로 낳았다. 따라는 아들을 몹시 사랑하여 늘 가슴에 안아 젖을 먹이고 연꽃 위에 눕혀서 열매의 즙을 먹였다.
그런데 어느날 아직도 젖을 먹는 어린 아들이 그만 사라져 버렸다. 1천불 나라의 부처와 보살들이 감추어 버린 것이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 따라는 수행으로 쌓은 모든 마음의 힘이 사라지며 가슴이 미어져서 젖이 마르고 달빛 같던 얼굴이 시커멓게 어두워지고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으며 하늘과 땅이 흔들리도록 통곡하니 눈물로 호수가 생기고 마른 나무에서 새잎이 나왔다.
부처님이 친히 내려오셔서 타라의 두 손을 잡아 일으키며 법을 설하시기를,
“육도의 어머니 따라시여, 사랑하는 사람과는 헤어지기 마련인데 어찌 이리도 고통스러워하시는가?”
그러나 부처님의 설법조차도 아들을 잃은 어미의 고통을 달랠 수 없었다. 아들을 찾아서 천상에서 지옥까지 육도를 샅샅이 뒤지고 헤매이면서 따라는 육도 중생들의 고통을 낱낱이 보게 되었다.
이렇게하여 따라보살은 우여곡절 끝에 1천불 나라의 부처와 보살들이 황금탑 안에 감추어 놓은 아들을 찾을 수 있었다. 마침내 상봉한 모자가 끌어안고 서럽게 울며 함께 흘린 눈물이 바다를 이루었다. 그 눈물은 약이 되어 그 눈물을 마신 모든 중생들이 장애와 병을 벗어났다. 아들을 다시 품에 안은 따라보살은 이에
“내가 이 아들을 찾아 육도를 헤매이면서 고통스러운 중생이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아들을 찾던 그 애절한 마음으로 고통스러운 중생들을 건지리이다.”
하고 서원하니 부처와 보살들이 몹시 기뻐하며 타라 모자를 좌대 위에 앉히고 세 바퀴를 돌고 절을 한 다음에
“따라 어머니시여, 우리가 아들을 숨긴 것은 중생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실상을 어머니가 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였다.
수없이 많은 중생들을 구원한 따라는 부처님이 바뀐 지금도 뽀딸라 궁전에 살면서 외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애절한 마음으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중생들을 돕고 있다. 라싸의 달라이라마가 거하는 궁전의 이름을 ‘뽀딸라’라고 한 것은 관음보살의 성지를 뜻하지만, 한편으로는 중생을 어루만지는 관음보살이나 따라보살의 자비의 마음을 상징하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듯 자비의 눈물에서 탄생한 따라보살신앙은 설역고원 티베트에 완전히 정착되면서, 투뵈왕국 최고의 영웅 송쩬감뽀 왕의 부인들 중에서 네팔출신 부리쿠티부인은 '그린따라'로, 당나라출신 부인 문성공주는 '화이트따라'의 형상으로 각기 역활분담되면서 민중속으로 스며들어 티베트불교의 든든한 자양분이 되었다.
또한 따라보살은 1042년 인도에서 대설산을 티베트로 넘어와 티베트불교의 불씨를 되살린(후홍기) 동인도출신 아띠샤존자의 수호신이기도 하고 특히 초대 달라이라마(1391-1474)는 따라보살을 헌신적으로 숭배하고 그녀에 대한 찬가를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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