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심 사라지고 텅비워진 충만함 느껴”
요즘 종교 유무를 불문하고 각계각층에서 절 수행법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전개되고 있다. 급기야는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서 그 절수행의 효과를 편성하여 널리 방영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절 수행이 심신의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주는데 탁월한 효과를 보이고, 그것이 생생한 체험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뇌성마비를 앓았던 예술가 한경혜씨가 절을 통해서 장애를 극복한 사연은 너무나 유명하다. 현대의학으로 치료하기 힘들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사람도 절 수행을 통해서 건강을 회복하고, 사업 실패로 실의에 빠진 사람도 절 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업장을 깊이 참회한 결과 새 삶을 살아 사업에도 성공을 거둔다. 사회의 인텔리 계층인 판사들 사이에서도 절 수행법이 퍼지면서 직무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직장 생활을 원만히 수행해 내고 있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과연 절 수행이 무엇이기에 이러한 기적적인 효과를 보여주는 것일까?
절이란 몸을 굽혀 상대방에게 존경의 예를 표현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절에는 두손을 모아 합장하고 허리를 숙여 반배하는 것과 오체투지(五體投地)의 큰 절이 있다. 오체투지란 두 무릎과 두 팔꿈치, 그리고 이마의 다섯 부분을 땅 바닥에 바싹 붙이고 절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자신의 중요한 부위를 가장 낮은 땅바닥에 대면서 극진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존경하고 예를 표하기 때문에 그 순간에 자신의 아만심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절하는 그 순간에 텅 비워진 충만함을 맛보게 된다.
절하는 예절이 수행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절을 할 때 상대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낮추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독소인 삼독심(三毒心)을 없애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원각경약소초(圓覺經略疎抄)>에서는 오체투지를 통해 다섯 가지 번뇌인 오개(五蓋)를 제거한다고 말한다. 오개란 탐욕과 분노에다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흔들리는 도거(掉擧), 마음이 명징하지 못하고 흐릿하고 어두운 혼침(昏沈), 그리고 모든 것을 믿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의심을 말한다. 마음이 흔들리고 어둡고 매사에 불안한 것은 어리석음으로 인해 밝게 깨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몸 굽혀 ‘존경의 예’표현
번뇌 제거 신심도 청정
이렇게 절을 통해 번뇌를 다스려 마음을 평화롭게 안정시키고 최종적으로 지혜를 개발하여 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불교 수행법으로 손색이 없는 것이다. 번뇌가 제거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 해도 그것은 불교 수행으로서 가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절 수행은 똑같은 동작을 수없이 되풀이하기 때문에, 그 똑같은 동작과 마음 작용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심신의 집중력을 증장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삼매로 이어지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자신의 육체적 한계와 나약한 마음을 이겨내고, 고통마저 녹여 내기 때문에 인욕과 자기 극복에 커다란 도움을 준다. 특히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규칙적으로 골고루 움직여 주기 때문에 어떤 운동의 효과보다 탁월한 효능을 보장해 준다. 그래서 어떤 비용도 들이지 않는 건강법으로서의 절 수행이 일반인에게도 확산일로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절 수행을 통해서 무시이래로 쌓은 업장을 소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공덕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절을 하면서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을 잘못 다스려 맺힌 한, 원망, 분노 등을 깨끗이 씻어내게 되고 그렇게 해서 흐렸던 마음이 밝고 청정해 지니 무엇을 하든 마음이 가뿐해지고 자신감이 붙게 된다.
아울러 절은 육체를 움직이는 동적 작용을 통해서 마음을 간절하게 품기 때문에 참회와 용서,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극진히 표현할 수 있다. 그냥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일배일배 정성스럽게 마음을 다하여 절하면서 나를 있게 한 부모와 이웃은 물론, 하늘과 바람, 구름 등 모든 삼라만상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내는 순간, 나는 전 우주와 함께 하는 소중한 존재요, 전 우주 또한 나의 한 몸임을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절 수행의 특징
“육체적 움직임 통해 구체적 무아 체험”
수행이란 마음에서 올라오는 탐욕과 분노, 집착과 갈등, 억울한 마음과 슬픔, 두려움과 공포, 애착과 증오, 게으름과 방종 등을 다스려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얻고 바람처럼 자유롭고 걸림없이 살아가기 위해 닦아나가는 것을 말한다. 걸림없는 삶, 그것이 결국은 깨달은 자의 삶이다. 그것은 내가 철저히 비워지는 무아의 체험 없이는 불가능하다.
절 수행은 육체의 움직임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무아를 체험하게 된다는 점에서 여타의 수행법과는 다른 두드러진 특징을 보여준다.
몸을 통해 무아를 확인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지만, 육체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강한 실천의 힘이 없을 때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관념이나 생각으로 무아를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다. 생각으로 마음을 비우고, 생각으로 무아를 이해하며 그려보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몸으로 하는 무아의 체험은 힘든 땀방울과 인욕을 요구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상(相)이 많다. ‘나’라는 생각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특히 몸과 관련된 ‘나’라는 상은 다른 어느 것보다 강하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은 몸으로 인해 많은 죄업을 짓고 산다. 이 몸에 대한 애착 때문에 사람들은 되도록 더 잘 먹기 위해서, 더 편해지려고 한다. 몸의 불편함을 못 참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소유하려고 하고 자연과 환경을 파괴한다.
우리는 이 몸을 매개로 일상생활에서 현실과 어우러진다. 몸은 일상생활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몸은 재산, 자식, 친구, 주변의 모든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몸으로 접하는 대상과 사건에 대한 욕심을 채우려고 한다. 이 모두 몸으로 인한 욕망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공간만 확보되면 어디서든 실천
정기적으로 지속하면 심신 안정
그런데 절 수행은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몸을 통해서 비워나간다. 그러면 물질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몸을 조복받게 되면 몸과 관련된 욕망의 상들이 비워진다. 몸을 조복받기 이전에는 육체적 욕망의 대상에 끌려 다녀 괴로워했지만, 이제는 몸과 마음을 잘 조복받아 나 자신이 내면의 평화를 누리는 것은 물론 가정생활, 사회생활도 아주 좋게 흘러간다. 지금까지 몸이 ‘나’라고 생각해 왔다면, 그러한 삶은 업력에 지배되는 삶이다. 반면 절을 통해서 몸을 극복하면 몸으로 인한 업력에 지배받지 않는다.
또한 절 수행은 육체적으로 몸을 움직임과 동시에 마음으로 자신을 닦는 과정을 동시에 병행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몸과 마음 두 가지를 모두 움직여 수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절하면서 염불하고 절하면서 화두를 들고, 절하면서 몸과 마음을 관하고, 절하면서 사경을 하고, 절하면서 참회 및 감사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절은 몸과 더불어 마음이 가기 때문에 지루하거나 단조롭지 않고 혼침에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신을 집중하여 수행할 수 있다. 다른 수행법 같은 경우, 몸이 피곤하면 쉽게 졸거나 정신이 몽롱해지곤 하는데 절은 구체적인 활동을 통하여 몸과 마음이 동시에 깨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집중하여 반복적으로 움직이기에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은 물론 육신의 건강에도 커다란 도움을 준다.
운동으로서 절 수행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만 조금만 확보되어 있으면 어디서든 실천이 가능하다. 걷기나 마라톤처럼 드넓은 자연환경이 필요한 것이 아니요, 구기운동처럼 운동장이나 도구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헬스를 하기 위해 특별히 운동기구를 살 필요도 없다. 좌복만 있다면 누구나 간편하게 할 수 있다. 설사 좌복이 없더라도 어느 곳에서건 심신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할 수 있다. 아울러 절 수행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정기적으로 진행해야 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심신의 안정을 유지하는데 매우 탁월한 수행이다.
끝으로 연기, 무아, 공 등 부처님 법에 대한 철저한 인식 속에서 절을 하게 되면 그 절 수행은 불교만이 간직한 독특한 수행법으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지친 사람들에게 밝은 희망으로 다가올 것이다.
절 수행의 마음 자세
“일심으로 절하면 참마음 자리로 돌아가”
절 할 때의 마음가짐은 어찌 보면 절하는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 절을 할 때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자세로 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나 공덕이 크게 달라진다. 절 수행의 참다운 의미를 맛보려면 마음의 준비를 확고하게 갖추고 마음의 흐름을 잘 제어하면서 깊은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늑나마제는 <법원주림(法苑珠林)>에서 절하는 마음자세에 따른 7가지 예법을 제시했다. 그것을 참고로 하여 절 수행의 마음 자세를 정리해 보겠다.
① 나 자신을 최대한 낮추는 하심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절을 할 때는 자신을 텅 비워야 한다. ‘나’라는 생각과 내가 누군데 하는 상을 버리고 자신을 철저히 밑바닥까지 낮추면서 그 낮춘다는 생각까지 버려야 한다. 그래서 늑나마제는 아만하고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절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② 절을 받는 대상에 대한 존경심과 공경심을 품어야 한다. 절을 할 때 부처님이 바로 눈앞에 살아 계신다고 여기고 몸과 마음을 다하여 절해야 한다. 설사 절을 받는 대상이 부처님이 아니더라도 부처님처럼 존경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이렇게 부처님이 내 앞에 생생히 살아서 앉아 있다고 여기며 절하면 절을 지극 정성으로 하는 것은 물론이요 온 마음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③ 어떤 유혹에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끊임없는 불퇴전의 정진력을 품어야 한다.
④ 어떤 고통에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인욕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⑤ 밝은 마음과 청정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 늑나마제는 이것을 발지청정례(發智淸淨禮)라 하여 슬기로운 마음이 밝고 예리하여 법계를 깊이 알고 마음에 장애가 없는 청정한 상태에서 예배를 올리는 것이라고 했다. 마음이 비고 장애가 없어 한 부처님께 절하는 것이 일체 부처님께 절하는 것과 같으며 한 번 절하고 한 번 일어남이 가장 높고 훌륭하다고 했다.
⑥ 정신을 놓치지 않는 집중력을 지녀라. 마음이 외부의 대상에 따라 오락가락하거나 방해를 받지 않고 이러저러한 잡념에 좌우되지 않기 위해서는 절하면서 마음을 어느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해야 한다.
⑦ 불.보살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자기 자신이 본래 성불해 있다는 신심을 지녀야 한다. 비록 자신이 중생의 삶으로 미혹되어 윤회하고 있지만 본래 나 자신은 본래 부처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본래 부처임을 관하면서 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늑나마제는 정관수성례(正觀修成禮)라 했다. 이러한 본래 부처의 마음가짐이 하심하는 마음이요 상대방도 부처님처럼 존경하는 마음이다.
⑧ 절하는 자와 절을 받는 대상인 불.보살이 둘이 아닌 점을 깊이 관하는 마음을 품어라. 나와 부처님의 본래 바탕은 공(空)으로서 한 마음이다. 그래서 내가 부처님 속으로 들어가고 부처님이 내 속으로 들어온다. 부처님뿐만 아니라 모든 대상에 대해 공으로써 평등한 마음으로 절한다. 자타가 없고 범성이 따로 없다. 부처와 중생을 가르지 않으며 똑 같은 평등한 자리에 서 있다. 이것을 실상평등례(實相平等禮)라 한다. 나와 부처가 다르지 않고, 나와 일체 대상이 다르지 않다면 어느 하나에 지극정성으로 절하면 모든 부처와 중생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 하나의 진법계(眞法界)에는 모든 것이 연기관계로 어우러져 있다.
따라서 하나에 절하면 일체에 절하는 것과 같으며 그렇게 법계에 진입하는 것이다. 이것을 늑나마제는 변입법계례(遍入法界禮)라 했다. 일심으로 절하는 이 마음으로 우주 법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절하는 순간 내가 참마음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며, 그렇다면 절하면서 감사하는 그 마음은 우주법계의 모든 두두물물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렇게 절하면서 우리는 하나일 수 있으며 한 생명일 수 있다. 내가 탑에 절하면 탑도 나에게 절한다. 내가 부처에게 절하면 부처도 나에게 절한다.
합장하는 법과 효과
“흩어진 마음 하나로 모으는 예절”
합장(合掌)이란 두 손을 합하여 예를 표하는 것이다. 절의 일종으로 취급되며 큰절할 때 반드시 합장을 동반하게 된다. 합장하는 것 자체만으로 마음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으며 육체적 건강에도 효과가 상당하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보고되기까지 한다.
합장은 흩어져 있던 자신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는데 의미가 있다. 그렇게 한 마음이 되면 진실한 마음으로 깨어있게 되며 지극해지고 마음을 다하기 마련이다. 마음이 모아지면 심신이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어떤 행위를 하던 거기에 정성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경전을 읽거나 염불을 하게 되면 정신이 통일되어 그것에 시종일관 흐트러짐 없이 몰두할 수 있다. 또 그런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면 하심하는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몸에 배기 마련이다.
그러면 어떻게 합장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어떻게 합장해야 우리 마음이 일심에 머물러 마음을 다할 수 있을까. 합장에서도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내 앞에 부처님이 계신다는 생각, 아니 부처님 같은 분이 계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온 마음을 다하여 합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공손한 마음으로 바로 선 자세에서 두 손을 심장 위치에서 가지런히 모아 합장하되 몸이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 양 발뒤꿈치는 서로 붙여 밀착시키되 양발 앞부분은 약간 벌어져도 무방하다. 바르면서도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양 손바닥은 서로 밀착되어 빈틈이 없어야 한다. 손가락 사이가 벌어져서도 안 되며 어그러져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너무 손바닥과 손가락을 가지런히 하려고 의도적으로 힘을 주면 근육이 긴장이 되어 균형이 깨진다. 합장은 몸의 균형을 잡으면서 편안한 마음 상태를 유지해야 하므로 손바닥을 가지런히 합하되 힘을 주어서는 안 된다.
심장위치 두손 가지런히 모아
하심하고 존경하는 마음 표현
합장한 손이 몸 중앙과 일직선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양 팔꿈치가 좌우의 갈비뼈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두 손목이 앞가슴 명치 위, 손가락 두 마디 정도가 떨어진 곳에 위치하면 자세가 자연스럽다. 손끝은 코끝을 향해 똑바로 세워야 하며 상대방 쪽으로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 또 턱을 당겨 고개를 약간 숙여 손끝이 코끝을 가리키도록 한다.
설혹 양 팔에 힘을 주어 양팔이 한일자로 일직선 상태가 되도록 수평을 유지한 상태에서 두 손목을 꼿꼿이 세워 합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너무 양팔과 손바닥이 긴장이 되어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리고 거기에 신경이 쓰일 정도로 마음과 자세가 불편해진다. 그렇게 되면 심신의 균형이 깨지기 쉬우므로 이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혀 숙달되지 않은 사람을 제외하곤 그렇게 권장할 바가 못 된다.
합장을 생체역학적(生體力學的)으로 검토하면 인체의 기둥인 척추를 축으로 하여 인체를 좌우대칭의 균형상태로 만든다고 한다. 우리는 보통 앉거나 서 있거나 한쪽으로 기울고 비틀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합장은 신체의 중심과 균형을 바로잡아 신체의 조건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준다. 또한 손바닥에는 중요한 경락이 흐르는데, 합장을 통해서 좌우의 기가 모아져 전신의 기의 흐름을 조화롭게 만든다고 한의학에서는 말한다. 합장을 하면 따스한 기운이 느껴지고 긴장이 완화되면 편한 느낌을 갖는 이유는 이 때문이라고 한다. 손을 비비거나 박수를 치는 것도 손바닥 기의 흐름을 도와 긴장을 풀어주고 전신을 깨어 있게 만든다.
합장한 채 허리를 60도 정도 굽혀 절하는 것을 공손히 머리를 낮춘다 하여 저두(低頭) 혹은 반배(半拜)라고도 한다. 저두할 때 보면 손끝이 축 처지는 사람이 많은데 그러면 영 보기에도 좋지 않으니 손끝이 처지지 않도록 주위를 기울인다. 그리고 90도 이상 허리를 지나치게 기울이는 것도 좋지 않다. 도반들끼리 인사할 때, 스님들을 뵐 때, 큰절하기 전에 기타 등등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합장 저두한다. 이렇게 합장하고 저두하는 모습을 생활화할 때 그 자체만으로 심신의 안정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데 일조를 할 것이다. 남 눈치 보지 말고 생활속에서 합장 저두를 실천해보길 간곡히 권한다.
오체투지 큰 절하는 방법
“고요한 적정의 순간 나와 상대 땅은 하나”
탄력 이용해 사뿐사뿐 몸 움직이듯
낙엽처럼 바닥에 납작 엎드리는 절
오체투지 큰절은 먼저 합장 저두하고 바로 선 상태에서 시작한다. 그 전 과정을 구분 동작으로 나누면 합장 - 꿇어앉기 - 손 집고 발 포개며 접족례 - 일어서기로 나누어진다.
① 꿇어앉기 : 꿇어않을 때는 합장하고 허리를 바로 세운 상태에서 그대로 무릎을 구부리면서 앉는다. 이때 허리는 구부리지 말아야 하며, 무릎은 어깨너비 정도의 자연스럽게 벌린다. 그리고 고개를 자연스럽게 숙인다. 무릎을 꿇을 때 양발의 뒤꿈치 모아 세워 엉덩이가 발뒤꿈치에 닿도록 한다. 이때 숨을 길게 내쉰다.
② 손 집고 발 포개며 접족례(接足禮) : 손 집고 발포개고 접족례 할 때는 손과 손 사이를 머리가 들어갈 정도로 유지하고 손가락은 벌리지 않으며 양 손끝은 15도 정도 안으로 오므려 집는다. 이때 양손을 바닥에 대면서 동시에 발을 포개고 이마를 바닥에 대는 동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호흡이 자연스럽다. 손을 바닥에 댈 때 동시에 왼발을 오른발 위에 올리며 이마가 바닥에 닿는 동시에 엉덩이가 양 발꿈치 붙도록 엎드린다. 이때 이마를 비롯한 양쪽 팔꿈치와 양쪽 무릎 등 다섯 곳이 바닥에 닿아야 오체투지(五體投地)가 되는 것이다.
접족례란 엎드려 절하면서 부처님의 발을 받드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부처님께 마음을 다해 존경을 표하는 행위이다. 접족례를 할 때는 손바닥을 위로 하여 귀 밑의 높이까지 올리되 부처님의 발을 조심스레 올려서 내 머리를 부처님의 발에 댄다는 기분으로 한다.
손바닥을 바닥에 댈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양 손바닥을 동시에 댄다는 것이다. 다만 가사를 수한 스님의 경우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 손을 먼저 바닥에 댄 후 왼손을 바닥에 댄다. 이는 가사를 입고 절할 때 가사가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③ 접족례에서 일어날 때 : 손바닥으로 바닥을 밀면서 머리를 들어 팔을 편다. 몸을 약간 앞으로 내밀면서 발가락을 나란히 꺾고 일어나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합장을 한다. 이때 접족례 한 손바닥을 바닥에 댈 때는 무릎 가까이 혹은 멀리 대지 말아야 일어설 때 무릎과 허리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④ 일어서기 : 일어서기는 발가락과 무릎을 꿇고 합장한 자세에서 발뒤꿈치를 붙이면서 가볍게 일어선다. 절대로 엉덩이부터 구부정하게 일어서면 안 된다. 그렇게 할 경우 보기에도 부자연스러우며 몸에 무리가 와 허리 병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일어설 때는 손바닥을 바닥에 대고 머리를 앞으로 살짝 내밀 때 생기는 탄력을 이용하여 일어나면 허리에 무리가 생기지 않는다. 이 탄력을 이용하는 것이 절을 힘들이지 않고도 바르게 많이 하는 비법이다. 청견스님은 이와 관련하여 학, 공작, 닭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목을 앞으로 조금씩 움직여 그 탄력을 이용하여 사뿐사뿐 몸을 움직이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접족례하고 일어설 때 숨을 깊게 들이 마신다.
⑤ 유원반배(唯願半拜) : 유원반배는 고두례(叩頭禮) 혹은 고두배(叩頭拜)라고도 한다. 고두례는 여러 번을 절을 할 때 마지막에 올리는 예절을 말한다. 고두례를 올리는 이유는 아무리 많이 절을 한다 해도 부처님에 대한 예경의 뜻을 모두 표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면서 마지막으로 극진한 마음을 전달하는데 의미가 있다. 또는 절을 마지막으로 올리면서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전달하는데 있다.
고두례는 접족례 후 팔꿈치를 바닥에 붙이고 머리를 어깨 높이로 들고 합장한 손을 코 끝에 닿을 정도로 한 다음, 손바닥을 다시 바닥에 짚고, 이마를 바닥에 대고 바로 일어선다. 고두례하면서 합장할 때 자신이 바라는 바를 간절히 염원한다.
절을 할 때 하심하는 마음이 간절한 수행자의 모습은 오체투지의 순간에 자신의 다섯 가지 중요한 부분과 몸이 바닥에 착 달라붙기 때문에 마치 바닥에 낙엽처럼 납작 엎드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납작 엎드리며 마음을 다한다. 그런 아주 고요한 적정의 순간에 절하는 나와 절을 받는 대상과 나와 대상을 받치는 땅은 하나가 된다.
여러 가지 절 수행법(1)
몸을 움직여 산란한 마음 극복하면 ‘삼매’
절하는 횟수를 세면 정신 집중
복식호흡 하면 심신 안정 평안
절은 육체와 마음 두 가지를 동시에 다루면서 하는 수행이다. 오체투지 큰절로 신체를 움직이면서 마음으로 어느 대상에 집중해 가면서 적정한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마음으로 집중하면서 절을 하게 되면 108배나 1080배, 그 이상의 절을 하더라도 단조로운 상태나 산란한 마음을 극복할 수 있으며 깊은 삼매의 경지에까지 오를 수가 있다. 절하면서 마음을 집중하는 방법으로는 그 집중의 대상으로 호흡이나 그 신체의 움직임을 관하거나, 염불 주력 화두 사경 참회법 등이 있다.
1) 절하면서 호흡하는 법
절을 할 때 기본적인 호흡법은 몸을 일으킬 때 숨을 들이마시고 접족례하면서 동작을 정지할 때 숨을 참으며 몸을 숙일 때 내쉬는 것이다. 숨을 들이마실 때는 부처님의 밝은 기운이 코를 통해 전신을 휘감고 발바닥과 손끝까지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날숨을 내 쉴 때는 나쁜 기운과 더불어 잡념이나 번뇌 망상을 내보낸다는 심정으로 한다. 이렇게 해서 호흡이 자연스럽게 길어지고 복식호흡으로 연결되어 심신이 평화로워지고 안정된 상태에 머물게 된다.
2) 절하면서 참회 및 감사하는 법
참회(懺悔)는 자신이 지은 죄업과 허물을 뉘우치고, 다시는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는 굳센 결의요 맹세다. 참회를 통해서 자신의 업장을 소멸하고 희망찬 앞길을 열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참회법으로 절 수행만큼 효과적이고 강력한 힘을 지닌 것은 없으리라 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절을 통해 참회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 새롭고 활기찬 삶을 살아갔다.
가장 일반적인 절을 통한 참회법은 절하면서 입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마음으로 자신이 지은 죄업을 낱낱이 고하면서 뉘우치는 것이다. 온 몸과 마음으로, 절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죄과를 참회하는 것이다.
그 다음 방법은 예불대참회문을 외면서 참회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참회문을 보고 외면서 절하기도 하고, 한 사람만 참회문을 외고 다른 사람을 그 말을 들으면서 절하기도 한다.
또는 참회와 더불어 감사하는 마음을 내며 절하거나 자신이 직면한 절실한 문제를 생각하면서 절하는 것도 좋다. 이와 관련하여 녹음기를 이용하여 명상음악과 더불어 명상 메시지를 들으면서 천천히 1배 1배 절하는 방법이 요즘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다. 절 명상 테이프를 틀어놓고 거기서 나오는 메시지를 떠올리며 1배1배 마음을 다하여 천천히 절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깊이 응시하는 것이다.
3) 절하면서 수를 헤아리는 법
절을 하면서 수를 헤아리게 되면 산란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어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효과적이다. 좌선할 때도 초심자의 경우 마음이 안정이 안되면 화두에 집중할 수가 없다. 이런 경우에는 하나, 둘, 셋 하면서 호흡을 세어나가면 마음이 들뜨거나 방황하는 것을 막아 주어 화두에 집중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준다.
절하면서 그 절하는 횟수를 세어가는 것도 마음을 집중하는 좋은 방법이다. 절을 하면서 수를 헤아리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108염주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108개 달린 염주를 하나하나 세어가면서 108번을 마치는 것이다. 1080배는 이 108염주를 열 번 돌리면 된다. 이럴 경우 108염주를 한 번 마치면 성냥개비나 콩 등의 도구를 사용하여 열개가 되면 1080배를 하는 방식으로 수를 세어 나간다.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는 108염주를 사용하지 않고서 횟수를 세어나간다. 즉 서 있는 상태에서 앉으면서 ‘하나’, 접족례를 올리면서 ‘하나’, 일어서면서 ‘하나’라고 세면서 한 번 절할 때마다 같은 숫자의 절 횟수를 세 번씩 반복해 나간다. 혹은 1배를 올리면서 ‘하~나~’라고 깊이 횟수를 세어나갈 수도 있다. 이렇게 절하는 숫자에 마음을 집중하면서 108배까지 진행해 나가면 마음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꼭 붙들어 맬 수 있다.
여러 가지 절 수행법(2)
“화두 들고 절.간화선 동시 수행”
불.보살 명호를 염송하면
심신 경쾌하고 삼매 들어
4) 절하면서 염불하는 법
절하면서 염불을 하게 되면 염하는 불.보살님의 명호에 빈틈없이 깨어 있게 되므로 심신이 경쾌해지고 용이하게 절 삼매는 물론 염불삼매에 몰입할 수 있다. 여러 대중들이 함께 염불하면서 절하는 몇 가지 방식을 제시해 보겠다.
① 대중을 2개조로 나누어 한 조에서 절을 하면서 염불하며 나머지 한 조에서는 절하면서 그것을 듣는 방식이다. 먼저 대중들을 A조, B조로 조를 나눈다. 조 이름을 자비, 연꽃으로 지을 경우, 자비조가 절하면서 염불하면, 연꽃조는 절만 하며 상대편의 염불소리를 듣는다. 그 다음 연꽃조가 절하면서 염불하면, 자비조가 절하면서 그 염불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서로 번갈아 가면서 절하면서 염불하고, 절하면서 상대편의 염불소리를 집중해서 듣다보면 념념상속이 되어 절수행은 물론 염불 수행도 잘 이루어진다. 그리고 염불하는 것도 사성염불(四聲念佛)로 음율에 맞추어 하게 되면 염불에 집중이 잘 되고 소리 또한 아름답고 조화롭기 때문에 환희심을 내어 절을 하게 된다.
② 다같이 함께 염불하면서 절하는 방식이다. 절 수행에 참여한 전체 대중들이 한결같은 목소리와 동작으로 절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아마 사찰이나 법당에서 가장 많이 하고 있는 형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여러 대중들이 함께 절하면서 염불하다 보면 절하는 행동이나 염불 소리도 제각각이어서 통일감을 찾기 힘들며, 그렇기 때문에 정신이 산란하여 집중하기가 어렵다는 결함이 있다. 이럴 때는 인례하는 스님이나 지도법사가 염불소리와 목탁소리를 사성염불조로 리듬에 맞추어 리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③ 녹음 테이프 소리를 들으며 절하는 방식. 염불 녹음 테이프나 CD를 틀어놓고 그 소리를 들으면서나 거기에 맞추어 많은 대중이 한 마음이 되어 절하는 것이다. 그 염불소리가 정확히 사성염불로 시종일관 규칙적으로 진행된다면 거기에 집중하여 마음속으로 염하면서 절한다면 절 수행이 잘 진행될 수 있다.
5) 절하면서 화두 드는 법
절하면서 화두를 드는 수행은 절 수행과 간화선 수행을 동시에 병행하는 것이다. 화두에 대한 간절한 의심을 일으키면서 절을 하게 되면 무엇보다도 혼침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며 절하는 이 놈의 당체가 누가인가를 간절히 의심하므로 집중도 잘 된다.
‘이 뭣고’ 화두를 든다고 할 때, 합장할 때 혹은 합장하고 일어설 때 “이 ~”하면서 길게 이어가고 허리를 숙여 절 할 때 “뭣고?”하면서 의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무’자 화두의 경우는, 합장 또는 합장하고 일어설 때 “어째서”라고 하고, 허리 숙여 절하면서 “무라 했는가?”라고 길에 의심을 지어가는 것이다. 절하면서 화두를 들 때 역시 망상이 오면 전제를 들어나가다 단제로 이동한다.
6) 절하면서 심신의 움직임을 관하는 법
이것은 절을 하면서 동작 하나하나를 관찰하는 법이다. 합장한 자세에서는 ‘합장’하면서 합장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꿇어 앉으면서 ‘앉는다’ ‘앉는다’하면서 꿇어 앉는 모습을 보는 것이며, 일어서면서 ‘일어섬’ ‘일어섬’하면서 일어서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몸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마음이 움직일 때는 그 움직이는 마음을 관한다. 예를 들어 절을 하면서 ‘절하기 싫다’, ‘힘들다’ 하는 마음이 자꾸 올라오면 그 올라오는 마음을 알아차린다. 혹은 절하다 망상이 올라오면 망상하는 그 순간을 느끼고 알아차린다. 알아차리면 올라오는 마음과 망상은 그대로 소멸한다. 그런 마음이 사라지면 다시 절하는 행동에 집중하면서 다시 동작 하나하나를 관하면서 절을 계속한다.
이 밖에도 절하면서 다른 수행법과 병존하는 방법은 많다. 절하면서 간단한 주력도 할 수 있고 절하면서 호흡을 흩트리지 않고 일자일배(一字一拜, 1자 쓰고 1배함) 혹은 일자삼배(一字三拜, 1자 쓰고 3배함)의 사경법 등을 진행할 수 있다.
절 수행의 효과와 효능
“매일 108배로 집중력 증진”
어린이 정서안정에 특효
쌓인 업장도 눈녹듯 소멸
절 수행을 통해서 어떠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현대인에게 절 수행은 어떠한 효능을 안겨다 주는가. 사실 합장하는 그 순간에, 절하는 그 순간에 나를 비우고 온 몸과 마음을 기울이기 때문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고요한 적정한 순간을 맞이하게 마련이다. 마음을 다하여 절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와 용서, 화해와 존경의 마음이 전해져 나와 너 모두에게 울림을 준다. 절 수행의 몇 가지 효과와 효능을 언급해 보겠다.
첫째, 집중력과 삼매력을 증진시킨다. 절을 통해 마음과 몸을 다하여 현재의 이 순간에 집중해 있는 순간, 우리는 고요한 선정에 이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전개될 때 념념이 상속되고 신체의 움직임 또한 한결같은 흐름을 타게 된다. 몸과 마음이 한결같으니 고요한 삼매의 경지에 이른다. 좌선을 통한 마음 집중이 정적인 상태에서 삼매에 들어가는 반면 절은 신체를 움직이면서 삼매에 든다는 점에서 활동력이 강하고 주의력이 산만한 어린이, 청소년에게 집중력을 강화시키는데 효과적이다.
요즘 들어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많아, 심각한 병리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주의력이 결핍된 어린아이나 청소년들에게 절 수행을 통해서 집중력을 향상시켜주면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심신을 잘 발달시켜 나갈 수 있다. 똑같은 동작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게 해 인욕하는 마음을 키우고 집중력은 물론 마음이 안정까지 가져다주게 되면 정서적 발전과 육체적인 발달에도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둘째, 몸을 변화시켜 건강은 물론 아름다운 육체를 만든다. 아함부 경전인 <업보차별경(業報差別經)>에서는 부처님께 예배를 드린즉 10가지 공덕을 갖추게 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묘색신(妙色身)을 얻는다는 것이다. 절을 하게 되면 육신이 신묘해질 정도로 아름답게 된다는 얘기다. 매일같이 규칙적으로 108배를 한 결과 갖가지 질병에서 건강이 회복되고 균형잡힌 몸매를 갖추게 된다는 사례를 주변에서 많이 듣곤 한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나 각종 스트레스로 인한 여러 가지 질병도 절을 통해 회복하여 행복한 생활을 누리며, 비만증에 시달리던 사람도 가벼운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셋째, 아만심을 없앤다. 아만심이란 “내가 누군데” 하는 생각이다. 어디서나 ‘나’를 내세우고 ‘나’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한, 마음이 편중되어 있고 욕심에 사로잡혀 독선과 편견만 있고 남을 인정하고 수용할 줄 모른다. 그럴수록 화가 치솟고 싸움과 투쟁이 일 것이다. 그런데 절을 통해서 자아의식을 자연스럽게 소멸시켜 겸손한 사람을 만든다. 아상이 줄어듦으로써 자신을 내세우거나 타인을 멸시하는 생각이 사라지고 상호존중하며 신뢰하는 마음가짐을 맺어준다. 그 결과 평화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가정, 집단, 사회가 평화롭고 행복해 진다.
넷째. 무시이래로 쌓은 업장을 소멸한다. 절을 하면서 참회나 염불 등 여러 가지 정신적인 수행을 겸하게 되면 마음속에 견고하게 뿌리박고 있던 맺힌 응어리나 한을 풀게 된다. 자신을 텅 비워 너와 나의 경계가 무너지면 집착이 사라지고 과거에 지었던 원한과 상처가 화해와 용서로 어울리게 되어 모든 장애가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 밝아진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깨달음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 아닐까.
아울러 절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겐 모든 사람들이 그를 믿고 따른다고 했다. 사람들이 믿고 따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그 사람의 인격과 인품을 믿고 신뢰하며 존경한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라도 믿음이 가는 사람은 진정 아름답고 좋은 사람이다. 그런 인격을 절 수행을 통해 갖추어 보도록 하자.
매일 아침마다 절을 한다는 것, 108배를 한다는 것, 그것은 물론 쉽지 않다. 그러나 마음을 설득해 게으른 마음을 물리치고 일단 1배1배 마음을 다해 절해보라. 그러면 자연스럽게 108배를 하게 될 것이며, 그 이상의 절도 못할 것이 없다.
'바이로챠나 > 불교입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도오계 수계의식(信徒五戒 受戒儀式) (0) | 2011.03.13 |
---|---|
사찰 스님들의 칭호와 호칭 (0) | 2011.03.13 |
업장소멸 방법 (0) | 2011.03.13 |
도량석(道場釋)의 의미 (0) | 2011.03.13 |
불교의 인간관 오온(五蘊) (0) | 2011.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