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이 발전하면서 현상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의 비밀이 속속들이 밝혀져 왔다. 이 작업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관되게 진행되어 온 그 방법은 하나의 물질을 계속 쪼개어 분석하면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근본실체가 무엇이냐를 밝히는 것이다. 아울러 모든 물질에 공통되는 성분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사실 이러한 작업은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매우 일찍부터 시도되었다. 물론 과학기구가 발달되지 않았으므로 오로지 인간이 지닌 이성의 추리에 의존했지만, 그 결론은 동양이나 서양이 동일한 바가 있다. 즉 모든 물질은 근본적으로 몇 가지의 동일한 요소로 구성된다는 요소설(要素說)이 그것인데, 그 중 네 가지 요소에 대해서 만큼은 그리스와 인도와 중국에서 모두 근본바탕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그 넷을 사대(四大)라고 불렀다. 사대란 흔히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이라고 표현되는데, 이들은 실제에 있어서 각각 고체성, 액체성, 열, 운동을 뜻한다. 이 네 가지 요소들이 적절히 화합하여 물질적인 형체를 이루는데, 불교에서는 이런 물질적 형체를 색(色)이라고 부른다. 인간도 우주 속에 있는 물질적 존재인 한, 색은 인간존재의 근저를 이루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색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근간이 되는 부분'인 것이다.
그런데 인간을 구성하는 근간적 부분은 물질적 형체인 색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교가 성립할 당시 인도의 유물론자들은 인간을 오로지 사대(四大)의 화합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간주하고 있었다. 제32문에서 설명했듯이 부처님은 이러한 극단적 사고방식을 특히 경계하였다.
인간이 외형상 물질적 존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을 구성하는 또다른 근간적 부분으로서 정신적인 것이 있음도 아울러 주목하였던 것이다. 정신적인 부분에는 역시 네 가지가 있다고 하였으며, 물질적인 부분을 색이라 칭했던 것처럼 정신적인 부분을 명(名)이라 칭했다. 결국 부처님은 인간이란 정신과 물질의 결합체라고 파악했던 것이다.
앞에서 말한 '근간이 되는 부분'을 불교에서는 온(蘊)이라는 말로써 표현한다. 온이란 쌓임, 모임, 집합 등을 의미한다. 이 말은 특히 인간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이 몇 가지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즉 앞에서 말한 대로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적 형체인 색이라는 집합과 정신을 구성하는 네 가지 결합을 일러 오온이라 칭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소위 오온설이 성립된다. 오온이란 물질의 색온과 정신의 수온, 상온, 행온, 식온이다.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오온을 입으로 불러 봤을 것이다. 공식적인 행사가 있을 때마다 독송하고 있는『반야심경』은 앞 부분에서 이 오온에 대한 바른 인식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 그리고 바로 나 자신에 대한 바른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다.
『반야심경』은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을 별개의 것인 양 집착하지 말기를 촉구하며, 그 구체적 내용인 오온도 마찬가지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정신과 물질의 유기적 존재임으로 어느 한 측면만을 중시하거나 그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천명한 것이라 이해된다.
색온 이외의 수, 상, 행, 식이라는 사온은 색온을 바탕으로 하여 개체를 지속적으로 존속시키고자 느끼고, 생각하고, 작용하고, 식별하는 정신적 기능을 각각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색은 육체이다.
수(受)는 즐거움이나 고통 등의 감정을 느끼는 감수작용으로서, 외계의 자극에 대하여 뭔가의 감각, 지각, 인상 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想)은 대상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표상작용으로서, 이의 대상은 반드시 외계만이 아니라 기억의 내용 등도 포함된다. 감수된 것을 색깔이나 모습 등으로 마음속에 그리고 표상하여 개념화하는 것이다.
행(行)은 의지 및 그 밖의 정신작용으로서, 어떠한 정신을 형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상에 대하여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작용을 가리키며, 또는 보다 넓은 의미로서 잠재적으로 형성되는 힘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신체와 언어와 의식으로 표출되는 업(業)을 형성하는 작용이다. 식(識)은 판단이나 추리에 의한 식별작용을 가리킨다.
대상을 구별하여 인식하는 것이고, 어떠한 인식에 대해 판단하는 의식작용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음의 작용 전체를 통괄하는 기능도 지니며, 마음 그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 수 있겠다. 우연히 꽃밭을 지나치다 눈길을 끄는 꽃을 보고서 좋은 기분을 느꼈다면, 이는 수온 때문이다. 그러면서 마음에 드는 이 꽃이 자신의 책상 앞에 놓여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면, 이는 상온 때문이다.
그래서 이 꽃을 꺾어서 집으로 가지고 가야 되겠다고 생각하여 행동을 취하려 했다면, 이는 행온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를 판별하여 그래도 된다든가 그래서는 안 된다는 등의 판단을 내렸다면, 이는 식온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내면에 있는 몇 단계의 정신이 유기적이면서 거의 동시적으로 활동함으로써 육체를 통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색온은 인간의 구체적인 신체기관으로 드러난다. 즉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다. 마음을 물질인 육체의 범주에 포함시킨 것이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사온이라는 정신적 집합을 담는 하나의 그릇으로 생각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물질의 집합인 이런 신체기관을 통하여 인간은 외부의 대상을 내면으로 끌어들여 느끼고 생각하고 작용하고 식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오온설은 결국 색온으로써 모든 물질적 요소들을 끌어들여 나머지 사온으로써 인간의 심리적 요소를 드러내게 된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원시불교에서는 인간이 이같은 다섯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즉 오온의 원래 의미는 인간의 심신(心身) 전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교리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오온의 의미가 점차 확대되어, 이윽고 인간의 심신뿐 아니라 주변의 세계 전체를 의미하게 되었다. 즉 물질세계와 정신세계 전체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특히 인간존재로 한정하여 오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할 때는 5취온(五取蘊)이라는 말을 별도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 오온을 5음(五陰)이라고도 한다.
오온설의 의의는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생명활동의 측면에서 관찰하여 현실세계의 현상을 정확하게 포착한 것이라고 평가된다. 오온설은 물질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정신의 독자성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물질보다는 정신쪽에 중점을 두고 있다. 즉 인간존재를 정신과 물질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경우는 그 정신적 부분을 생명활동이라는 측면에서 세분화한 것이 오온설인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인간관이 정신적 측면만을 절대시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후대의 교학에 있어서 인간의 정신적 측면에 대해 깊은 탐구가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일종의 사조(思潮)로서 연구가의 관심에 의한 것이지 불교 전체 입장이라고 볼 수 없다. 이를 오해하기 때문에 불교를 비현실적인 관념론이라고 간주해 버리는 사람도 없지 않은 것이다. 인간은 물질적 측면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처음부터 인정하였던 것이 불교의 입장이다.
물질적 측면을 인정하기 때문에 인간을 고(苦)의 덩어리라고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온설은 원래 인간구조를 설명하는 것으로서 인간이 왜 고의 존재인가를 설명하려는 취지를 지니고 있다. 물질과 정신의 두 힘이 복잡하게 얽히기 때문에 고일 수밖에 없다. 이는 인간 현실에 대한 파악이다. 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가 이후 가르침의 초점이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水野弘元 저, 김현 역,『原始佛敎』(→ 문 12), pp. 87∼88.
『불교학개론』(→ 문 1), pp. 54∼56.
정승석 역,『불교의 정치철학』(→ 문 10), pp. 16∼21.
高崎直道,『佛敎·インド思想辭典』(→ 문 13), pp. 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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