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일반

수미산

왈선생 2011. 6. 3. 15:56

 

 

 

 

 

 

 

카일라스 - 꽃잎 날리며 ‘옴 마니 팟메 훔’



코라 순례자의 노래


카일라스(6714m)는 티베트 서북지방 황량한 고원지대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힌두교의 신화는 그 산을 메루라 하고, 불교에서는 수미산이라 부릅니다. 힌두교와 불교, 자이나교, 그리고 티베트의 전통 종교인 뵌교, 이 네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신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산입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이 산을 ‘캉티세’, 혹은 ‘캉린포체’라 부릅니다. 눈(雪)의 보석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순례자들이 이 성스러운 산을 찾아 산 주위를 돌며 기도를 합니다. 이 기도 행위는 어제오늘이 아닌 오래 전부터 행해져 온 의식입니다. 불교에서는 산을 도는 의식을 ‘코라' 라 부릅니다. 한 번의 코라는 이 생에서의 업(業․Karma)을 소멸시킬 수 있고 108번의 코라는 해탈할 수 있다고 합니다. 코라의 길은 52킬로미터로 보통 3일 정도가 걸립니다.


티베트 고원의 순례자는 바람입니다. 나도 바람이 되어 카일라스에 갑니다. 고갯마루에 걸린 수많은 타루초 깃발을 흔들고, 얄룽창포 강을 건너서 카일라스에 갑니다. 그것은 나의 오랜 기원이기도 합니다.


순례자 마을인 다르첸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세번째의 방문이라 낯설지 않습니다. 올해가 60년만에 돌아오는 길해(吉年)라 유난히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다르첸 마을 뒤편으로 카일라스를 향해 오르는 가파른 산길이 보입니다. 카일라스 내부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나는 지금 그 길을 오르고 있습니다. 앞서 걷는 열 일곱 살 소녀의 이름은 ‘처링’입니다. 나의 카메라 가방을 메고 있습니다. 그 애는 나의 셀파이며 동시에 코라의 길잡이입니다.


코라는 파콜(Out Kora)과 낭콜(Inner Kora),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파콜은 카일라스 주위를 도는 것이고, 인코라로 불리는 낭콜은 산 내부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인코라는 바깥 코라를 열세 바퀴 돈 사람만이 들어 갈 수 있는 금지된 길입니다.


고갯마루에는 수많은 타루초 깃발들이 금줄처럼 걸려 있습니다. 카일라스 봉우리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계곡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는 가느다란 순례의 길이 나를 부릅니다. 그곳에 가면 내 안에 깃 든 신성을 만날 수 있을까요?

소녀와 나는 이곳에다 준비해 간 타루초 깃발을 매달기 시작합니다. 한 티베트 승려가 도움을 줍니다.


마음을 정화하고, ‘옴 마니 팟메 훔.’

업장을 소멸하고, ‘옴 마니 팟메 훔.’

“카일라스여, 나를 당신의 품에 들게 하소서.”


금지된 문을 넘어 신의 땅으로 발길을 내디딥니다. 저만큼 앞서가는 승려의 붉은 장삼 자락이 이정표가 됩니다. 길은 ‘셀룽추’ 계곡을 끼고 이어집니다. 안으로 점점 들어갈수록 들리는 건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뿐 적막강산입니다. 이 적멸의 시간들 너머에 신의 세계가 있는 걸까요?


계곡 언저리 풀밭으로는 키 작은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습니다. 소녀는 꽃을 한 움큼 꺾어옵니다. 소녀의 걸음걸음마다 꽃잎이 허공에 날립니다.

“옴 마니 팟메 훔, 옴 마니 팟메 훔…”


소녀는 나에게 꽃을 건네줍니다. 꽃잎 하나 따서 옴 마니 팟메 훔, 꽃잎 둘, 옴 마니 팟메 훔…


소녀의 주문에 이끌려 얼마를 그렇게 걸었는지 모릅니다. 이 소녀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아득해집니다. 이 골짜기를 들어 선 순간부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린 느낌입니다. 작은 사원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셀룽 사원입니다. 카일라스에 있는 다섯 사원 중 하나입니다.


꽃잎을 날리며 걷던 소녀가 손을 가리킵니다. 그 손끝에 거대한 설산 하나가 보입니다. 카일라스입니다. 소녀와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오! 메루여…


기원전 200년경에 씌어진 힌두 경전 ‘비슈누 프라나’에는 이 산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메루는 우주의 중심에 84,000리그로 솟아 있고 7대륙과 7대양의 중심원에 둘러싸여 있다. 동쪽은 크리스털, 서쪽은 루비, 남쪽은 라피스 라쥴리, 북쪽은 황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빛나는 축을 중심으로 태양과 별과 달이 순행하며 천국과 지상, 그리고 명부들의 영역이 존재하고 있다. 그 정상으로부터 갠지스강이 흘러나오면서 지류가 갈라져 네 개의 강이 발원한다.’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카일라스는 구름 속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사원은 텅 비어있습니다. 마당에 매달려 있는 타루초 깃발만이 카일라스를 돌아온 바람에게 기도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이곳에서 코라의 길은 두 갈래로 나눠집니다. 산너머 장타 곰파를 거쳐 다르첸으로 내려가는 길과 카일라스 바로 아래 다궁 가규파 불탑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이 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내친 김에 불탑까지 가 보고 싶지만 소녀는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젓습니다. 하루가 걸리는 아주 위험한 길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티베트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장타 곰파로 이어지는 순례의 길을 택합니다. 불안해하는 소녀를 간신히 설득해 조금만 더 올라보기로 합니다.


산 능선 하나를 더 올랐습니다. 카일라스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마음에 해발 5000미터가 넘는 산길도 견딜만 합니다. 카일라스 앞마당이 바라다 보입니다. 카일라스 앞에 있는 바위산은 거대한 사원 같습니다. 구름 속에 가렸던 카일라스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연은 이 티베트 고원에 거대한 신전을 만들었습니다. 시바신이 상주하고 제석천이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저마다의 신을 찾아 이곳으로 옵니다.


티베트 고원의 바람이 되어 간절히 찾아 헤매던 내 안의 신은 이곳 어디에 있을까요? 정신이 혼미해져 옵니다. 너무 오래 걸었습니다. 나는 카메라 가방을 베고 누웠습니다. 소녀도 내 곁에 따라 눕습니다. 카일라스 암벽에 계단이 보입니다. 저 계단은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라고 합니다.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상상을 하다 잠이 들었습니다. 제석천을 만나고, 시바신을 만나고…


깨어보니 카일라스 설산이 눈 안 가득 들어옵니다. 햇빛에 빛나는 카일라스는 거대한 보석입니다. 산허리에 머무르던 구름 한 점이 바람에 실려 하늘로 흘러듭니다. 내 안에 깃 든 신성을 찾겠다는 마음도, 좀 더 가까이 저 산에 다가서려던 욕심도 사라졌습니다. 머리는 대기처럼 투명하고 몸은 날아갈 듯 가뿐합니다.


잠든 소녀를 깨웁니다. 소녀를 따라 장타 곰파를 향해 걷습니다. 소녀의 꽃잎 기도가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바람에 꽃잎이 날립니다.

“옴 마니 팟메 훔.”



*** 길잡이 ***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뵌교 등 네 종교의 신이 사는 성스러운 산 카일라스. 많은 순례자들이 카일라스를 찾아 산 주위를 돌며 기도를 올린다. 불교에서는 산 바깥을 도는 걸 ‘코라’라고 하며, 안쪽을 도는 것을 ‘인코라’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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