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일반

한국 '아리랑'은 티베트 '아리요'에서 왔다?

왈선생 2011. 3. 23. 14:43

 

라사대학의 게치 교수는 "한국의 아리랑의 원조가 티베트에 있다"고 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그간 '아리랑'의 기원에 대한 무수한 주장과 설(說)이 있었지만, 아직 그 어느 것도 이렇다할 확신을 주는 것이 없는 실정이었기에 그의 말에 솔깃해졌다.

 

티베트 토번의 마지막 왕의 할아버지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 할 정도로 불교의 전파에 절대적인 힘을 행사하였다. 이때 티베트의 토속 종교인 본교의 저항이 워낙 컸던지라 불교를 거부하는 관료나 지방 주지가 있다면 목을 베면서까지 교세를 확대해 나갔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과하면 화를 부르는 법. 부왕의 지나친 불교중흥 정책으로 왕권과 국가 경제가 사원에 휘둘리게 되자 그의 아들 랑다마(Rang dama) 왕이 급기야 불교 탄압정책을 펴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원을 봉쇄하고 승려를 죽이기까지 하는 사태가 일어났던 것이다.

바로 이때 호법(護法)의 사명감에 불탔던 '랑모'라는 사람이 검은 모자와 흑포(黑布)를 쓰고 어두움에 몸을 숨긴채 왕을 향해 활을 쏘았다. 그 화살에 맞아 랑다마왕이 죽게 되었고, 이후 막강한 종교권에 대항할 왕실이 몰락하고, 랑다마는 티베트 왕정의 마지막 왕이 되었는데 이때가 AD 890년대 무렵이다. 이후 긴 세월 동안 티베트는 무정부 상태를 유지하다가 몽골의 침입을 받아 원나라 왕실과 손을 잡으면서 신정(神政)일치의 달라이라마 체제가 확립되었다.

이후 티베트는 불교의 세력이 더욱 커져갔고, 불교를 탄압하던 왕을 쏘아죽인 랑모는 호법신으로 승화되어 지금도 티베트 사원에서 축제를 할 때면 랑모춤을 춘다. 이 춤은 당시에 어둠에 몸을 숨기기 위하여 검은 모자를 쓰고 흑포를 둘렀던 모습을 그대로 하여 추므로 '샤낙춤'이라고 부른다. '샤'는 티베트어로 '모자', '낙'은 '검은 색'을 뜻하므로 '검은 모자 춤' 혹은 '흑모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기 위해 썼던 랑모의 검은 모자는 이제 불교를 수호하는 호법의 상징물이 되었다. 모피로 장식된 테는 영적 세계인 무색계를 나타내고, 덮개 부분은 선정(禪定)의 세계를, 덮개 윗 부분의 장신구들은 인간과 천상 존재들의 욕망의 세계, 즉 욕계를 나타낸다. 또한 모자의 장신구들은 탄트리카(밀교수행자)들이 점차적인 수행의 진보를 이루어 나가는 것을 형상화하는 호법의 만다라가 된 것이다.

티베트 뿐 아니라 북인도·네팔·부탄·중국 일대에 티베트 불교사원이 있는 곳이면 참의식과 라마댄싱을 행한다. 이 의식은 각 지역과 종파와 사원의 전통에 따라 의례 절차와 춤의 구성 요소에 다소 차이가 있고 검은 모자도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샤낙춤이 빠지는 곳은 없다. 그러므로 샤낙춤이 없으면 '참' 의식이 아니라고 할 만큼 랑모 춤은 티베트 라마댄싱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왕을 쏘아죽인 랑모의 지위가 이렇듯 호법신의 반열에 올라 한껏 영예를 누리는데 비해 랑모가 속한 반란군에 쫓겨간 랑다마왕 아들의 운명은 어찌되었을까? 랑다마왕이 랑모의 화살에 맞아 죽게되자 그의 아들은 왕실을 탈출하여 멀리 서쪽 오지인 '아리'로 숨어들었다. 간신히 죽음을 면한 랑다마왕의 아들은 훗날 그 지역 일대를 다스리며 구게왕국을 형성했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그 뒤로 티베트 일대에는 "아리요~ ♪♬"라는 노래가 많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음악학자인 게치 교수가 한국의 아리랑의 원류가 티베트의 '아리요~'라고 주장하는 것은 발음상의 유사성만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티베트 민요에는 '아리요~'의 후렴구가 들어가는 노래가 한국의 아리랑 이상으로 많고, 노래 가락이나 발성, 리듬에 이르기까지 닮은 점이 많다. 그렇다고 한국의 아리랑의 기원이 티베트의 아리 지역의 '아리요~'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약된 느낌이 있지만, 티베트의 아리요와 한국의 아리랑은 흘려 들을 수 없는 친연성을 지녔음은 틀림없는 듯 하다.

티베트 서부에 위치한 구게 지역은 아직도 티베트 산악 중에서도 오지에 속한지라 적어도 일주일은 걸려서 험난한 여행을 해야한다. 게치교수는 증거를 대 볼테니 그곳에 같이 가보자고 조르지만 아직도 나는 가 보지 못했다. 눈앞에 지천으로 널린 티베트 악가무의 보석들이 먼저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보리농사를 많이 짓는 티베트 사람들은 한국의 막걸리와 흡사한 '창'이라는 술을 즐겨 마시는데 술과 음식 뿐 아니라 복색과 생활 풍습, 한국의 불교 악가무·마당놀이·탈춤 등 찾고 재어봐야 할 거리들이 너무도 많아 이곳에 눌러 앉아 수십년을 살아도 우리네 것과 짝짓기를 다 못할 것 같다.

작곡가·음악인류학 박사 http://cafe.daum.net/ysh3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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