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佛敎 운동이 전개되어 오면서, 참으로 人間다운 수행자는 자기의 깨달음을 추구해가면서도 이웃의 괴로움을 외면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웃의 깨달음을 자기의 깨달음 보다 앞세우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을 보살이라 불렀다.
이러한 보살의 출현은 전 佛敎사를 새롭게 했으니, 당연히 그들에게는 중생들을 이익케하기 위한 여러 가지의 실천적 방편들이 제시되었다. 크게 보아서 육바라밀, 사섭법, 그리고 사무량심등이다.
1.육바라밀
육바라밀이란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의 여섯 가지이다. 이 여섯 가지를 수행하면 미혹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으므로 육도(六度)라고도 한다.
보시(布施)란 아까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널리 베푸는 것이다.
지계(持戒)는 행동(行)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인욕(忍辱)은 분노(怒)하기 쉬운 마음을 다스려 능히 참아 견디는 것이다.
정진(精進)은 게으른 마음을 없애(목표를 향해)정진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선정(禪定)은 마음을 통일하여 흔들림 없이 고요하게 하는 것이다.
지혜(智慧)는 어리석고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하는 것이다.
육바라밀-춘원 이광수
님에게는 아까운 것이 없이
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이 마음
거기서 나는 보시를 배웠노라.
님께 보이고자 애써 깨끗이
단장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지계를 배웠노라.
님이 주시는 것이면 때림이나 꾸지람이나
기쁘게 받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인욕을 배웠노라
자나 깨나 쉴 사이 없이
님을 그리워하고 님 곁으로만 도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정진을 배웠노라.
천하에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오직 님만을 사모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선정을 배웠노라.
내가 님의 품에 안길 때에
기쁨도 슬픔도 님과 나와의 존재도 잊을 때에
거기서 나는 지혜를 배웠노라.
인제 알았노라.
님은 이 몸께 바라밀을 가르치려고
짐짓 애인의 몸을 나투신 부처님이시라고...
2. 사무량심(四無量心)
사무량심(四無量心)만의 실천으로도 범천에 날 수 있을 정도의 공덕을 지닌 수행자의 마음가짐으로 부처가 되려는 이는 법의 깨침과 함께 필히 실천해야 할 마음가짐이다.
1)자(慈) : 자비와 사랑의 마음으로 타에게 나의 기쁨을 나눠주어,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다.
2)비(悲) : 타의 고통에 대해 같이 슬퍼하는 마음으로 타의 고통을 내가 나누어 받아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다.
3)희(喜) : 타의 기뻐함을 같이 기뻐하는 마음으로 타의 기쁨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는 마음이다.
4)사(捨) : 타를 사랑하거나 증오하거나 친애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버려 모든 이를 평등히 존귀히 여기는 마음이다.
<다른글>
- 사무량심 -
중생을 향한 보살의 네 가지 광대한 마음
사무량심(四無量心)이란
모든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과 미혹을 없애기 위해 보살이 가지는 네 가지 광대한 마음이다.
자비희사(慈悲喜捨) 네 가지 마음을 무량으로 일으켜, 무량의 사람들을 깨우침으로 이끄는 것을 뜻한다.
무량심은 모두 이타의 마음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의 방편이기도 하다.
자무량심(慈無量心)은 자비를 주는 것이 한이 없는 것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마음으로, 자기가 받은 즐거움을 먼저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널리 모든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마음이다.
비무량심(悲無量心)은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고통의 세계로부터 구해내어 깨달음의 해탈을 주려는 마음이다.
희무량심(喜無量心)은 다른 중생의 기쁨을 함께 기뻐해 주는 마음이다.
보살의 마음은 일체에 대자대비의 마음으로서 나타나기 때문에
중생의 기쁨이 곧 자신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사무량심(捨無量心)은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보고 미움이나 가까움에 대한 구별을 두지 않는 마음으로 다만 중생을 생각할 뿐 미워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에 대해 이 마음을 일으키고 점차 친한 사람과 미운사람에게까지 평등하게 마음을 낸다.
사무량심은 대승불교의 핵심사상과 실천을 담고 있다.
자비가 사상이라면 희사는 실천이다.
3. 사섭법(四攝法)
위에 말한 사무량심(四無量心)이 남을 교화하기 위한 것 같으면 이 사섭법(四攝法)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실제행동에 옮기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행동의 도(道)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사무량심(四無量心)보다 적극적인 행동의 덕목이라 하겠다.
1) 보시섭 (布施攝) : 보시란 한마디로 말하면 베풀어 주는 것이다.
즉 재물을 구하는 자에겐 재믈을, 법을 구하는 자에겐 혜시(惠施)하여 주는 것이다.
이것을 재시(財施), 법시(法施)라고 하거니와 그것이 어느쪽이건간에 불자(佛子)로서 우매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선 먼저 그들이 바라는 바 욕구를 가능한 아낌 없이 또 바라는 바 없이 들어주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후세에 와선 이 재시(財施), 법시(法施)이외에 재(財), 법(法)의 보시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완전하게 이루어져 생사에 대한 두려움도 없게 해야 한다는 뜻이 상당히 강조되어 무외시(無畏施)가 첨가 되었다.
2) 애어섭 (愛語攝) : 애어(愛語)란 말은 사랑스런 말이니 상대자를 대할때 어떤 경우, 어떤 곳이던 간에 일체의 악한 말이나 거짓된 말을 하지않고 항상 진실되고 좋은 말, 사랑스런 말을 하라는 뜻이다.
3) 이행섭 (利行攝) : 모든 중생에게 이익되는 일을 하라는 뜻이다.
특히 중병에 걸겼거나, 액난을 만나서 괴로와하고 있을 때 같은 경우 자비를 근본으로 삼고 있는 불자라면 그에게 뭔가 조금이라도 성심껏 이익되는 일을 해 주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런것이 다 이행(利行)이다.
4) 동사섭 (同事攝) : 동사(同事)란 같이 일을 하라는 뜻이니 일반 중생과 함께 화복(禍福), 고락(苦樂)을 같이하며 그들을 교화하라는 것이다.
중생을 교화하는 방법에는 물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있겠지만 가장 좋은 조반자(助伴者)가 되어 고락(苦樂)을 나누며 이끌어 가는 이 동사섭(同事攝)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중의 하나라고 하겠다
'바이로챠나 > 불교입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회(輪廻)와 업(業) (0) | 2011.03.13 |
---|---|
보시하는 이의 7가지 마음 (0) | 2011.03.13 |
지장보살(地藏菩薩) (0) | 2011.03.13 |
목탁 치는 방법 (0) | 2011.03.13 |
우란분절(백중) 기도의 의미는 무엇인가 (0) | 2011.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