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 발 라
히말라야 산맥 북쪽 티베트의 깊숙한 곳에 현자들이 산다는 이상향 샴발라가 있다고 한다. 이 왕국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도시에는 황금 불상들이 줄지어 서 있으며, 아름다운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고 한다. 여덟 개 꽃잎의 연꽃이 활짝 피어 있는 듯한 지형 속에 자리잡고 있는 샴발라의 중심에는 샴발라의 왕이 산다는 카라바 궁전이 있다. 여덟 개의 꽃잎에 해당하는 각 분지에는 1,000만 개의 도시를 가진 12나라가 있으며, 작은 왕들이 다스리고 있다. 모두 96개(8×12)의 소왕국과 9억 6,000만명(8×1,000만×12)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샴발라 주민들은 병에 걸리지도, 굶주리지도 않으며 결코 싸우는 법이 없다고 한다.
샴발라의 기원은 『카라차쿠라 탄트라(時倫經)』라는 불교의 밀교 경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카라차쿠라 탄트라』는 역학(曆學)과 천문학, 수행법 등을 기술한 책으로 붓다의 말씀을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이 쓰여진 11세기 무렵의 인도는 이슬람 세력의 침입으로 위기를 맞고 있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폭력과 약탈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샴발라 같은 평화로운 이상향을 추구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후 12세기에 인도에서 불교가 힘을 잃어버리게 되자 『카라차쿠라 탄트라』는 샴발라 전승과 함께 티베트로 계승되었다.
『카라차쿠라 탄트라』에는 샴발라에 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그 예언에 따르면 이 세계가 악에 물들면 샴발라를 감싸고 있던 안개가 걷히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이때 샴발라 왕은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악의 세력과 전쟁을 벌여 마침내는 승리를 거둔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평화가 찾아오고, 사람들은 이상향에서 편안하게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신비의 왕국 샴발라는 10세기 이후 지금까지 티베트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런 이유 때문에 샴발라로 가는 길에 대한 '안내서'가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가 환상적인 이미지로 가득 차 있는데다가 철학적인 난해함까지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글들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여기서 그런 글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을 쓴 사람은 16세기의 티베트 왕인 림품파이다. 그는 '학자왕'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학식이 풍부했던 인물로서 시를 쓰는 데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사후에 샴발라에 환생했다고 하며, 이 『지식의 사자』(1557)라는 책은 그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사자에게 맡긴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샴발라로 가서 이 편지를 아버지께 전하거라. 진리의 말씀이 사물의 이중성이라는 산들을 정복하여 너를 인도하고,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 속에서 너를 도와 극복하게 해주기를 빈다.
······우선 라사를 출발해서 서쪽을 향해서 시가체(Xigaze: 중국 티베트 자치구의 남부)로 가거라. 그곳에 있는 사원에서 여행이 성취되기를 기원한 다음 중앙 티베트를 지나 네팔로 가는 길을 걸어가거라. 그런 다음 북서 방향으로 진로를 잡아 성스러운 카일라스산(Kailas: 히말라야 산맥의 북쪽, 카일라스 산맥의 주봉(主峰). 해발 6,714미터)에 오르거라. 이 산에는 황금 동굴이 있는데 그곳에는 나한중 하나인 앙가타 존자(尊者)가 천 명의 성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이면 성자들이 기도하는 음악 소리가 들릴 것이다. 다시 북서쪽으로 나아가면 라다크(Ladākh: 인도 북부. 지금도 라마 사원이 많이 있다)을 지나 카슈미르(Kashmir: 인도북서부에서 파키스탄 북동부에 걸친 넓은 고원 지대)에 도달할 것이다. 이 지방 마을들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라. 길은 점점 험난해질 것이다. 미로처럼 구부러진 산길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 몇 갈래 작은 길과 마주치게 된다. 여기에서 길을 잘못 들면 산의 계곡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방향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석가모니의 가호를 기원하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이다. 이 산간 지방을 무사히 통과하면 박시크의 나라(장소 불명. 타지크[Tadzhik]나 아프가니스탄 북부로 추정된다)로 나올 수 있다."
'샴발라 전설'이 서구 사회에 알려진 것은 17세기다. 예수회14)의 전도사인 F. 카프랄이나 E. 카셀라의 보고서에 의해 처음으로 이 '비밀의 왕국'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그들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통하는 길을 탐색하려고 티베트로 들어갔는데 그때 이 전설을 들었다고 한다. 처음에 이들이 쓴 문서에는 샴발라의 이름이 '셈발라(Xembala)'로 적혀 있다. 유럽 사람들이 티베트에 대해서 지니고 있는 밀교(密敎)와 비경(秘境)에 대한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19세기 이후에 샴발라 전설은 여러 방면에서 이용되었다. 러시아 태생의 블라바츠키(H. P. Blavatsky: 1831~1891) 부인이라는 초능력자가 등장하여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19세기 최고의 신비 사상가라고 일컬어졌는데 미국에서 '신지학협회(神智學協會)'15)를 설립하여 동서양의 신비 사상을 결합하는 '신사상(新思想)'을 제창했다. 그녀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능력은 샴발라의 현인인 마하트마에게서 온 것이며 마하트마로부터 받은 사명으로 '신지학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20세기 중반 무렵에는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화가이자 사상가인 니콜라스 뢰리치(N. K. Roerich: 1874~1947)가 티베트 학자들을 이끌고 중앙 아시아, 티베트 고원, 시킴 등을 탐색했다.그는 본격적인 샴발라 사상을 바탕에 둔 이상 사회 실현을 목표로 하여 국제적인 문화재 보호와 평화를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1933년 J.힐튼(J.Hilton)은 베스트셀러 <잃어버린 지평선>을 썼는데 이 소설에서 샴발라가 샹그리라로 묘사되면서 지상낙원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하나가 추가되었다. 근년에 들어와서는 아흐네네르베(Ahnenerbe, 나치친위대(SS)의 오컬트 연구기관)가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의 지시를 받아 두 차례나 광범위한 티베트 탐사를 실시했음이 밝혀졌다.
나치는 감추어진 왕국의 주민들로부터 협조와 동맹을 얻어내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나치가 샴발라 왕국을 정말로 찾았는지 여부는 추측의 문제이지만, 그들이 티베트를 탐사하는 동안 이상한 동맹자를 발견한 것은 사실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베를린에 입성한 러시아 군대는 티베트 수도승들의 시체가 여러 구 들어 있는 지하실을 발견했다는 설이있다. 시체들은 모두 초록색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일종의 비밀의식 중에 자살을 한 것으로 보였다. 그 후 며칠 사이에 수백 구에 달하는 티베트인 시체가 더 발견되었다. 모두 신분증 없이 SS 제복을 입고 있었고 초록색 장갑을 끼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자주 은폐되는 경향이 있지만 음모론자들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제시된다. 바꿔 말하면 샴발라의 역할에 대한 대대적인 은폐공작이 있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티베트는 중국 공산당의 침략을 받아 정복되었다. 하지만 샴발라에 대한 소문은 티베트의 자유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억누르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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