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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양향교

왈선생 2011. 2. 9. 17:27

영양향교 : 도계리(道溪里), 냇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마을.

마을의 좌우에는 낙동강의 원류인 장군천과 반변천이 흐르며, 일월산 남쪽 기슭에서 둔덕을 이루고 위치하며 냇물을 따라서 3도가 나 있다. 서쪽 마을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영양읍과 청기면, 그리고 수비면으로 통하는 세 갈래 길이 마을 앞 남편 중앙으로 나 있다.
본래 북초면의 지역으로서 뒷두들 혹은 도부라고 불렸다. 1914년 행정 구역을 고칠 때 당중동과 무등곡을 합하여 도계리라고 하고, 일월면에 편입하였다. 도계(道溪)를 풀이하면 냇물을 따라서 난 길이란 말이니, 냇물을 중심으로 마을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뒷두들은 1600년 무렵 이씨(李氏)라는 농부가 처음으로 마을에 들어와 둔덕 위에 농토를 일구어 살면서부터 뒷두들이라고 불렸다. 1678년 덕봉면 당중이라고 개칭하였다가, 1682년 일월면 도부리라고 불렀다. 이후,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마을 좌우로 하천이 흐르며, 하천을 따라 도로가 개설된 마을이라고 하여 도계동이 되었으며, 1964년 행정 분동으로 도계1리가 되었다.
도부리(道阜里)의 ‘도(道)’ 또한 뒤를 말하고, 북쪽을 드러내는 이름이라고 보인다. 그러니까 도부-뒷두들의 걸림이 이루어지는데, 도부는 뒷두들을 한자로 뒤쳐서 적은 경우이다.
이 마을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영양 향교(英陽鄕校)와 사의정사(思義精舍)이다. 영양 향교는 예전에 문묘 선현 봉사와 인재 양성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사의정사(思義精舍)는 한양 조씨(漢陽趙氏) 입향조(入鄕祖)인 참판공(參判公) 조원(趙源)의 종택으로 350년 전에 건립되었으나, 2002년에 기존의 종택을 철거한 후 현재의 모습으로 새롭게 중건하였다.
수월헌과 사의정사 사이에 350년 된 도 지정보호수 향나무 1그루가 우뚝이 서있다. 이 나무는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수월공(水月公) 조검(趙儉, 1570~1644)이 한양조씨 영양 입향조의 종택을 건립하면서 기념으로 심었다고 전해진다.

 

출처 : 晛溪亭
글쓴이 : 晛溪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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