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불교

룸비니(Lumbini)/ 탄생지

왈선생 2011. 8. 19. 20:40

 

 

 

 

 

 

 

 

 

 

 

 

 

 

 

 

 

 

 

 

 

 

 

 

 

 

 

 

 

 

 

"카필라국(迦毘倻羅國, Kapilavastu)은 어디인가?"

 


불교4대성지 중 하나인 룸비니로 향하면서 ‘해동의 나그네’의 발길은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국경선이라는 선 하나로 카필라성은 인도 땅으로, 룸비니는 네팔 땅으로 갈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인도 비자가 복수였기에, 먼저 카필라성터를 들렀다가 룸비니로 가는 순서를 정할 수 있었다. 교통요지 고락뿌르에서 룸비니는 북쪽으로 소나울리 국경을 넘어야 했기에 자연스레 발걸음은 북동쪽에 위치한 붓다의 고향으로 향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싯다르타는 카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카필라는 큰 왕국이 아니었고, 그의 혈통도 인도- 아리안계의 백인종이 아니라 몽고로이드 계통이라는 것, 그리고 한역으로 정반왕(淨飯王)이라고 번역된 것으로 보아 슛도나다 왕족들은 밥 ‘반(飯)’자를 이름의 돌림자로 가진 벼농사를 위주로 한 농경민족이었다는 설이 요즈음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니까 카필라국은 강대한 코살라국의 영향을 받는 일개 소국이었다는 것이다.

 


태자는 이런 가계와, 역시 같은 샤카족의 마야 부인을 부모로 하여 태어났다. 쉰살이 될 때까지 자식이 없었던 왕과 왕비에게 태기가 있으면서 상서로운 조짐이 보이고 놀라운 예언과 함께 범상치 않은 관상을 가진 사내아이가 태어나자, 온 나라는 그 아이가 당연히 왕국의 앞날을 빛낼 위대한 왕이 되리라는 기대에 차 있었다. 막상 본인은 자라면서 인생사 문제에 심각한 고민을 하는 ‘햄릿 형’의 인간으로 변해갔다. 이에 부왕은 아름다운 여인을 맞아들여 결혼을 시키고 주위를 온통 환락적인 분위기로 만들었지만, 고타마는 아들 라훌라가 태어나자 결국은 예언대로 출가를 강행하여 6년의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진리를 전파하는 길을 걷게 된다.

 


 이런 ‘위대한 포기’의 땅인 카필라성은 그가 출가 전 태자로서 29년을 보낸 곳이지만 샤카족 특유의 동족혼(同族婚) 관습으로 인해 코살라국 왕자의 원한을 사는 일이 생겨 붓다의 생존시에 초토화되고 샤카족도 모두 몰살되었는데, 이 때 붓다는 3번이나 이 전쟁을 만류했지만 인간의 증오심이 자비심을 능가하는 것인지 결국 샤카족과 카필라성은 멸족에 가까운 재앙을 받아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려 그 터 자체가 의심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1898년 고고학 발굴시에 명문이 새겨진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어 카필라바스투 유적지로 확정되어 보존되기에 이르렀다.

현재의 유적지는 사원터인 피푸와라와 궁전터인 간와리아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모두 붉은 벽돌 잔해만 남아 있는 폐허에 불과하여 세월의 무상함을 후인들에게 일러주고 있었다. 이런 폐허화는 순례승에 의해서도 목격되었는데 현장은,“카필라바스투국은 주위가 4천여 리이다. 빈 성이 많고 이미 황폐함이 심하다. 왕성도 퇴락하여 둘레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벽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기초는 아직도 높고 견고하다. 황폐함이 오래되어 사람이 사는 곳도 드문드문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 룸비니 동산이여!


어느 날 마야 부인은 비몽사몽간에 천신들에게 이끌려 설산을 넘어 티벳 고원에 있는 아뇩달지, 즉 마나사로바 호수로 가서 목욕을 함으로써 신성을 얻어 붓다를 맞이할 준비를 마치고 흰 코끼리를 품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이 코끼리의 상징은 인도에서는 성인이 태어날 때의 일반적인 길조였으니, 이른바 태몽이었다. 산달이 되어 부인은 당시의 관습대로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가다가 룸비니 동산에 도착했을 때 산 기를 느껴 나뭇가지를 잡고 싯다르타를 출산했다. 바이샤카달의 8일[혹은 15일?]일이었다.


경전들은 당시의 광경을 신비롭게 표현하고 있는데, 태자는 모친의 오른 쪽 옆구리로 태어났으며 땅에 발을 딛자마자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외쳤다는 것이다. 이 것을 누가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마는, 경전 특유의 상징과 비유의 한 예로 해석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우협탄생(右挾誕生)은 당시 인도사회의 계급제도하의 크샤트리아 계급을 상징한 것이고 칠보 걸음과 외침은 평생을 계급 타파와 인간 평등을 부르짖은 한 개혁가의 첫걸음이 시작했다는 일종의 ‘인간선언’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고타마 사문이 80세를 일기로 입적하기 직전에 제자들이 “어느 곳을 교단의 기념처로 삼아야 하느냐”고 묻자, 붓다는 태어난 곳을 비롯하여 깨달음을 얻은 곳, 처음 법을 설한 곳, 열반할 곳 등의 네 곳을 꼽았다고 한다. 붓다도 역시 보통 사람처럼 태어남이 중요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그런 면에서 룸비니는 위대한 탄생이 있었던 불교의 첫 번째 성지이지만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면서 망각의 강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룸비니의 폐허화는 법현·현장·혜초가 왔을 당시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이들에 의해 목격되고 있다.

 


우리의 혜초도 비록 “숲이 거칠고 길에 도적이 많아” 위험했다지만, 순례길에서 위대한 탄생지를 어찌 빼어놓을 수는 없었다. 하여서 다음과 같이 중천축국 안에 네 개의 대탑을 꼽으며 “셋째 탑은 가비야라국에 있으니, 이곳은 즉 부처가 본래 태어난 곳이다. 지금 무우수(無憂樹) 나무를 볼 수 있는데, 성은 다 허물어지고 없고 탑은 있으나 승려는 없고 또 백성도 살지 않는다. 이 성이 세 탑 중에 가장 북쪽에 있는데 숲이 거칠게 우거져 길에 도적이 많아 가서 예배하려는 이들이 이르기가 매우 어렵다” 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현장도 그때까지 남아 있는 유적인 돌기둥과 연못에 대하여 “룸비니 숲에 이른다. 그 곳에 연못이 있다. 물은 맑아 거울과 같은데 갖가지 꽃이 다투어 피고 있다. 그 북쪽으로 스무 걸음 남짓 되는 곳에 무우화수(無憂花樹)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없다.


바로 세존이 태어난 곳이다. 동쪽으로 서 있는 수투파는 아쇼카 왕이 세운 것인데, 두 마리의 용이 태자를 목욕시킨 곳이다. 또 마상(馬像)의 돌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역시 아쇼카왕이 세운 것이다. 나중에 벼락에 맞아 가운데쯤에서 부러져 땅으로 넘어졌다” 라고 세밀히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405년 처음으로 찾아온 법현도 “여기에 두 용왕이 태자에게 첫 목욕물을 끼얹어주었다는 연못이 있다” 라고 하였다.

 


입장료를 내고 기부금까지 강요당하고 들어선 넓은 룸비니 동산은 역시 폐허의 냄새만 가득했다. 수 많은 티베트식 오색 깃발이 펄럭이는 하늘 아래 중앙에 마야당이 서 있었다. 이 안에는 B.C 2세기에 조성되었다는 유명한 모자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이교도의 손에 파손되어 겨우 형태만 알아볼 수 있는 이 조각상은 그 옆에 새로 만들어진 복원상과 비교하면서 보면 마야부인이 무우수 가지를 잡고 서 있는 모습과 아기 싯다르타가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다.

 


혼잡한 마야당을 나오면 멀리 대탑의 잔해와 늙은 보리수도 이천여 년의 세월의 풍상을 말해주고 있었고, 아쇼카 석주는 비록 부러진 상태이지만 철책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데 글자는 아직도 선명하여 그나마 나그네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그곳에 쓰였으되, “나, 아쇼카는 즉위 20년 만에 몸소 이곳에 와서 예배하노라. 이곳은 붓다가 태어나신 곳이므로 돌을 다듬어 마상과 기둥을 세우게 하였노라. (중략) 이곳은 성스러운 곳이므로 세금을 8/1 만을 부과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해동의 나그네의 눈길을 오래 머물게 한 것은 넓은 연못 가였다. 정말 순례승들의 기록과 똑같이 맑은 물이 여전히 고여 있었는데 그 수면 위로 티벳불교도들이 걸어놓은 수많은 오색 깃발의 그림자가 거꾸로 투영되며 잔바람결에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물 밖과 안이, 나아가 진실과 허상이,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귀결되는 상태와 같았다. 한참을 수영삼매(水影三昧)에 들어 있다 깨어나서, 그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붓다! 그 위대한 탄생의 진정한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라고…

 


(글 : 다정 김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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