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들어선지 이미 1천 년이 지난 나라, 태국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사원들과 불상은 이곳이 불교국가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게 한다. 방콕에서 관광객들이 절대 잊지 않고 찾아가야 할 곳 중 하나가 바로 에메랄드 사원이라고 불리는 왓프라케우다. 이곳을 에메랄드 사원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태국에서 가장 성스러운 불상으로 여겨지는 에메랄드 부처상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불상의 역사에 관해서는 태국인들조차도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불상이 방콕 대궁전안 에메랄드 사원에 안치되기 까지는 기나긴 여정이 있었다. 이 여정을 살펴보면 태국북부에 왜 같은 이름인 왓프라케우 사원이 여러 개 있는지 알게 된다.
에메랄드불상은 한 덩어리의 초록색 옥을 정교하게 조각해 제작된 상이기 때문에 보석인 에메랄드와는 관계없이 그 색 때문에 에메랄드불상이라고 불린다. 다른 불상과 마찬가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이 상의 크기는 폭이 48.3Cm, 높이가 66Cm에 불과하다. 고대 문서 곳곳에 에메랄드 불상에 관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이들 문서를 기초로 해서 이 불상이 기원전 43년, 인도 파타나 주에서 제작되었다고 추정한다. 기원후 257년 인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에메랄드 불상은 실론으로 옮겨져서 457년 프캄 왕국의 아누룻 왕이 이를 되돌려 받기위해 고위성직자를 파견할 때까지 실론에 있었다. 아누룻 왕의 요청으로 배에 실린 에메랄드 불상은 폭풍으로 인해 현재의 캄보디아인 캄푸치아의 한 어촌에 다다르게 되고 곧 이 어촌에 홍수가 닥쳐 앙코르와트가 있는 도시인 인타팟으로 옮겨진다.
이 불상이 태국의 옛 수도인 아유타야에 옮겨진 것은 유통왕의 재위기간(1350-1369)중 이었다. 1391년에 왕조가 바뀌면서 에메랄드 불상은 석고모형 속에 보관돼 사리탑 속에 놓여 운반되다가 천둥번개로 사리탑입구가 붙어버리면서 착오로 일반 불상과 함께 한 사원에 놓이게 된다. 그 후 우연히 주지스님에 의해 불상의 석고모형의 코 부위가 초록색으로 벗겨진 것이 발견되면서 다시 세상에 나온 에메랄드 불상은 한 덩어리의 초록색 옥으로 정교히 조각되어 있어 그때부터 에메랄드 불상으로 불리게 되었다. 1468년 치앙마이의 왕이 이 불상을 자신의 수도로 옮긴 후 몇 년 뒤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라오스의 챠이야쳇타 왕자가 모친이 치앙마이 전왕의 딸이라는 이유로 왕권 승계자로 지목되었으나, 부왕사망 후 왕권승계를 둘러싼 형제간의 치열한 싸움으로 인해 당시 라오스의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으로 돌아간다. 왕자는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를 염려해 이 불상을 라오스로 가져갔고 이때부터 다시 이 에메랄드 불상의 수난이 재개된다.
치앙마이왕국은 다른 사람을 왕으로 추대하고 챠이얏쳇타 왕자는 라오스의 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그는 이웃 몬족과의 충돌을 피해 비엔티엔으로 수도를 이전하고 에메랄드 불상은 라오스 비엔티엔에서 214년간 있게 된다. 마침내 1779년 태국 챠크릿 왕조의 초대왕인 라마1세에 의해 에메랄드 불상이 태국으로 돌아오게 되고 한동안 새벽사원에 안치되었다. 그 후 1782년 라마1세는 방콕을 수도로 선포하고 자신의 궁정 안에 에메랄드 불상을 안치할 사원건축을 명령한다. 바로 이곳이 현재 에메랄드 사원이라고 불리는 왓프라케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