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불문에 보면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참석한 제자들을 살펴보면 "영산당시 수불부촉 십대제자 십육성 오백성 독수성 내지 천이백제대아라한 무량자비성중"이렇게 되어 있지요.
즉 십대제자 다음에 나오는 분들이 바로 십육성 즉 십육나한입니다. 나한은 아라한의 준말로서 부처님의 제자인성문 중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분들을 말합니다.
아라한은 "고귀한 사람"이라는 팔리어 Arahat에서 나온 말로서 욕망에서 벗어나 다시는 윤회에 떨어지지 않는자를 말합니다. 상좌부에서는 수행자가 도달해야할 최고의 경지를 일컷는 말이었으나, 대승불교에서 보살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자신만을 위하여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평가절하 되어진 측면이 있습니다.
아라한은 번역하여 마땅히 공양을 받을 만한 분이라는 뜻으로 응공(應供), 더이상 배울 것이 없는 자라는 뜻으로 무학(無學), 삶의 엉뚱하게 이끄는 도적인 번뇌를 모두 없앴다고 하여 살적(殺敵),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여 불래(不來)라고도 불리웁니다.
보통은 16명의 아라한을 이야기 하며, 16나한이라고 하지요. 부처님이 열발하신 이후로 미륵부처님이 오실 때까지 부처님이 없는 세상에서 중생들의 복전이 되라는 부촉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이곳에 소개하는 벽화들은 변산의 능가산 개암사의 나한전 벽화입니다. 안에는 십육나한상을 모셨고 밖에는 이렇게 벽화를 그렸지요. 그런데 그림의 배치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순서가 다르게 배치되어 있어서 조금 애매한 점이 있습니다.
보통 16나한의 순서는 핀돌라브하라드바아쟈, 카나카밧사, 카나카브하라드바아쟈, 수빈다, 나쿨라, 브하드라, 카리카, 바즈라푸트라, 지바카·판타카, 라후라, 나가세나, 앙가쟈, 바라나밧시, 아리타, 쿠다판타카입니다. 16나한은 당나라때 현장법사에 의해 중국에 전해지면서 숭앙의 대상이 되었고, 이 신앙은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해지면서 크게 성행하였지요.
이에 따라 나한상을 그림으로 그려 숭앙하는 풍습이 생겼으며, 곳에 따라서는 나한상을 만들어 불전에 봉안하기도 하였습니다. 나한신앙도 중국을 거켜서 오다보니 인도식발음과 중국식 발음이 달라서 약간씩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개암사의 나한벽화는 십육나한이 아니라 18명을 그려서 모시고 있는 것이 다른 점이지요.
십육나한이 중국에 와서 어느 사이엔가 십팔나한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십육나한에다가 가섭존자와 군도발탄존자를 더하여 십팔나한을로 모시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아마도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의발을 받들어 미륵불이 오실 때까지 계족산에서 기다린다는 이야기에서 더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달리 경우존자와 빈두로존자를 더하여 십팔나한으로 모시는 경우도 있는데요. 어떻게 모시던지 군도발탄존자나 경우존자는 어떤 분인지 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 벽화에서도 빈두로존자는 모셨지만 경우존자는 모시지를 않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 십팔존자를 맞추었느냐고요. 글씨가 작아서 잘 안보이지만 사실 왼쪽의 분은 고려말 조계종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종파들이 모일 때 중심이 되신 태고 보우스님이십니다.
조계종은 종조로 신라때 가지산파를 개창하신 도의국사님을 보시고 있으며, 중흥조로서 고려말의 태고보우스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보우스님을 18나한에 같이 모신 것은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존자 대신에 모신 것이지요. 현재는 십육나한을 청정한 수행자의 대표로 보고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
'바이로챠나 > 불 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세음보살 (0) | 2011.06.12 |
---|---|
아미타설법도 (0) | 2011.06.11 |
<수월관음도>, 고려 1310년, 견본채색, 430cm×254cm 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 소장 (0) | 2011.06.11 |
관세음보살 (0) | 2011.06.11 |
관음탱화 (불화 [佛畵]) [觀音幀畵] (0) | 2011.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