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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과 염불삼매

왈선생 2011. 3. 13. 14:34

 

염불과 염불삼매

 

정목 스님  

출가한 후 6년이란 세월! 깨달음이란 이름 아래 무척 괴로워하던 중 치성한 번뇌에 시달리던 막다른 골목에서 마침내 정토문으로 회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범부임을 자각하고 염불정진한 구도 열정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나의 진실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98년 7월 어느 날, 북한산 마루에서 아미타 부처님의 달빛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길고 긴 세월 동안 뇌리에 자리잡은 의혹을 해결하였던 것입니다.


그 후로는 또 다시 깊은 산속에 홀로 앉아 있기를 거부했습니다. 천강에 흐르는 달빛처럼 가슴 가슴마다 진실한 믿음이 새겨지기를 염원하였습니다. 나 또한 부처님 은혜에 감사드리며 저 달빛처럼 어둠을 밝히는 광명이 되리라 서원하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아미타불을 생각하며 한없이 온화한 자비광명을 느끼고 있을 때 모든 염불인의 가슴에도 광명의 달빛이 스며들 것입니다. 자비광명은 장애가 없어 일체 중생을 비추되 염불인에게는 곧 감응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위대함을 말하는가 하면 혹독한 비난을 가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든지 그것은 자유의지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의 생명은 안심입명(安心立命)입니다. 믿음으로써 마음을 편안히 하고 자신을 송두리째 맡겨 지극히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일의 성사 여부도 부처님의 뜻에 맡기고, 죽고 사는 것까지도 믿음에 실어 맡겨버립니다. 깨달음은 그 뒤의 일입니다.


그러나 이 곳에 이르면 자연히 깨달아집니다. 마음이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불교인은 부처님의 지혜를 우러러 믿어야 하며, 그 믿음의 궁극은 ‘일체 경계는 일심’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성취하여 연기적 세계관을 통찰하고 발심(發心)하면 곧 정각(正覺)이요, 수행의 궁극은 일심(一心)을 증득(證得)하여 뭇생명을 이익되게 하는 것입니다.


정토문도 역시 그러합니다. 염불수행은 아미타불의 자비광명에 대한 결정신심으로 안심을 얻고, 발심하여 일체의 인연과 은혜에 감사하면 정각(正覺)이요, 수행이란 보은(報恩)하고 회향하는 삶입니다.


진실한 믿음을 일으킨 염불인의 강물은 맑거나 탁하거나, 다 함께 흘러 흘러 마침내 일심의 바다에 도달합니다.


염불수행을 통해 얻은 믿음과 깨달음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염불수행에 있어서 칭명(稱名)은 믿음을 성취하는 방편(方便)이며, 관상(觀相)은 깨달음을 성취하는 염불선(念佛禪)입니다.


번뇌가 심중한 범부는 일심으로 아미타불(阿彌陀佛)의 명호(名號)를 생각(念)하고 부름으로써 자비광명에 대한 결정신심을 성취하여 본원력에 힘입어 윤회를 벗어난다는 확신으로 안심(安心)을 얻고, 인과법을 믿어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합니다. 선근이 깊고 예리한 근기는 관행(觀行)을 일으켜 보신(報身)의 경계(境界)를 관찰(觀察)함으로써 자연과 생명의 청정광명을 깨달아 보살도를 실천하여 대도(大道)에 나아갑니다.


염불법을 말하자면 부처님의 지혜를 믿고, 보리심 혹은 진실 신심을 일으켜서, 정토를 염원하고, 지성심으로 염불행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염불을 끊이지 않고 실천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염불은 대중적이고 행하기 쉽다고 말하지만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명호를 생각하고 부르며 경계를 관하는 수행이 끊어진다면 염불이라는 생명력을 잃게 되어 공덕을 온전히 얻지 못할 뿐 아니라, 깨달음의 계기도 만날 수 없습니다.


염불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과 명호를 부르는 칭명(稱名)의 행위가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적 여유가 없고 명호를 부르지 않더라도 염불의 공덕을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얻는 것입니다.


염불삼매는 바로 자신이 무량한 자비광명 안에서 호흡하고 있다는 생각을 끊지 않는 것입니다. 염불삼매를 얻기 위해서는 신앙(信仰)의 빛을 일으켜야 합니다.


신앙의 빛이란 진실한 믿음으로 정토를 염원하여 자비광명을 오로지 우러러 생각하고 관(觀)하는 것입니다. 믿음 깊은 염불삼매를 얻으면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염불 소리가 자연히 흘러 나옵니다.
염불삼매를 얻기 때문에 오로지 우러러 향하는 신앙의 빛이 자비광명에 섭수됨으로써 죄업이 소멸되고 영원히 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안심(安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안심을 얻기 때문에 인과법을 믿고 공덕행을 닦습니다.


염불삼매는 결정신심을 성취하고 안심을 얻어,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게 하는 최선의 방편입니다.
염불삼매는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며, 생사를 벗어나는 최상의 길입니다.
염불삼매가 곧 생사해탈입니다. 염불삼매 가운데서는 어떤 장애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영가의 장애나 삼악도의 두려움이 없으며, 윤회로부터도 자유스럽게 됩니다.


염불은 마음의 부처뿐 아니라, 우주적 생명으로서의 부처를 인식하게 하는 수행입니다.


염불삼매를 얻으면 범부가 곧 부처요, 자신과 우주적 생명인 부처가 본래 한생명이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마침내 일체 경계는 일심인 근원에 돌아갈 것입니다. 무량한 자비광명에 쌓여 있는 나,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다 함께 행복한 존재요, 무량한 공덕의 주인입니다.


이치가 이러하니, 믿음을 성취하면 정토를 멀리서 구할 것이 아니고, 몸 가운데의 불성(佛性)을 찾을 것도 아닙니다. 저 무량한 자비광명의 경계와 그 은혜의 물결을 바르게 인식하는 데 따라서 정토가 다가온다는 확신을 얻을 것입니다.


청정광명을 관찰하면 무명이 소멸되고 복덕이 따라 올 것이니 복과 지혜를 다른 곳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는 확고한 신념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점차 ‘나무아미타불’이 아니라 ‘아미타’ 일구만을 염해도 염불이 이어짐을 느낄 것입니다. 염불삼매! 그것은 스스로 무량한 자비광명 안에서 호흡하고 있다는 생각을 끊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언젠가는 빛이 될 광명의 씨앗, 깨달음의 꽃씨가 자라날 수 있습니다.

오늘 같이 기쁜 날 나는 이와 같이 사유하였네, 
석가모니 세존 피안으로 건너는 길 인도하시니, 
진실한 믿음으로 고해 건너는 염불의 배에 올라 
방일하지 않고 정진의 노를 쉼없이 저었네, 
마침내 순풍이 불어 청천 산하를 둘러 보니, 
아미타불 청정 무량광명으로 안심하라 하시네, 
나무본사 아미타불 두 분 성인께 예배드리고 , 
일심 귀명하여 대자비 은혜에 한없이 감사하네 

정목(正牧) 스님 (cafe.daum.net/amitapa)은 1987년 범어사(梵魚寺)에서 벽파 대선사를은사로 출가. 범어사 승가대학과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 범어사 강원 강사를 역임하였으며, 1992년 정토문으로 회심하여 정진 중 염불삼매를, 1998년 하안거 정진 중 관불삼매를 얻었다. 지금은 양산 오룡골에서 염불선으로 정진 중이며, 저서에 『염불신행의 원리와 비결』 『한국의 염불수행』 『정토에 태어나 성불합시다』 『도로아미타불』 『원효의 새벽이 온다』 『극락을 묻는 이에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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